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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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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875년에 「오페라·카르멘」의 초연이 갑자기 연기되었다. 작곡가「비제」의 병이 위독해진 때문이었다.
친구들은「비제」가「레종·도뇌르」훈장을 받지 못한 채 죽지나 않을까 염려했다.「레종·도뇌르」란 군사 또는 문화면에 뛰어난 공적을 쌓은 자에게 주는「프랑스」의 최고 훈장이다.
그래서 천구들이 문화상에게 부탁하러 갔다. 그러자 장관은「비제」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뛰어난 음악가로 <아를의 여인>과 같은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그 책이라면 나도 언젠가 읽어본 적이 있지. 그 저자가 아직 훈장을 못 받았다니 말이 안되지. 당장에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전하시오.』
이리하여 「비제」는 그와 소설가「알퐁스·도데」를 혼동한 문화장관의 덕택으로「레종·도뇌르」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은「레종·도뇌르」훈장의 위신이 예전 같지 않다. 받은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63년에 「드골」장군은「레종·도뇌르」의 위신저하를 막기 위해 바로 국가공로장이란 훈장을 제정했었다.
그러나 국가공로장의 보지자도 지금은 5만 6천명이나 된다. 「레종·도뇌르」훈장 쪽은 29만 명이 넘는다.
훈장「인플레」도 막을 길은 없는가 보다고「퐁피두」대통령도 재임시에 훈장보지자의 수를 줄이는 방법을 심각하게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나 묘안은 나오지 않았다.
훈장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명예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훈장은 주는 쪽에서도 매우 유쾌한 일이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줄 수도 없는 것이 훈장이다.
몇 해 전에 영국정부는「비틀즈」의 4「멤버」들에게 작위와 훈장을 준 적이 있다. 그들의 예술을 높이 평가해서가 아니라 외화획득에 큰 업적을 세웠다고 여긴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것과 같은 훈장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반환소동이 일어났다.「비틀즈」가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값이 떨어진 훈장을 이제는 부끄러워서 패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최근 일본기계의 최연소「타이틀」보지자가 된 조치훈군에게 훈장을 주자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분명히 조 군은 우리의 국위를 크게 떨친 한국의 한 사람이다. 비록 그 국위가 온 세계에 뻗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자랑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나라에도 훈장은 많다. 무공, 보국, 산업, 수교, 새마을, 문화, 국민훈장…. 이렇게 종류도 많다. 따라서 받은 사람도 많다.
지난해에「차이코프스키·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젊은「피아니스트」정명훈군도 훈장을 탔다.
그러니까 조 군에게도 줄만도 하지 않겠느냐고 여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법으로 가다간 언젠가는 또「산레모」가요제에 입상했다고 훈장을 주자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훈장「인플레」도「인플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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