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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들의 옛 노래「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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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흘러간 옛 노래가 오늘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대중가요계에 있어 75년은『흘러간 옛 노래「붐」의 해』라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흘러간 옛 노래라고 해서 물론 몇 백년전의 노래들은 아니다. 기껏 5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 우리대중가요의 역사로 봐서 수 십년전 또는 십여 년 전의 노래가 되살아난 것이다.
양악이 이미 19세기말에 이 땅에 들어왔다고 하지만 역시 1920년대에「재즈」음악을 발판으로 형성을 본 우리대중음악의 유형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된다.
그때부터 대중가요의 주조를 이룬 것은「트로트」가락이라 하겠다. 물론 근자에 와서는 비「트로트」계의「포크·송」이 굉장한 위력을 보이기도 했다.
「솔」「사이키델릭」「팝·송」등의 열풍이 대중가요계를 휩쓸고 대학가에서까지 통「기타」가 판을 쳤다. 이들 통「기타」부대를 청년문화의 대표적이라고 하는 주장조차 있었다.
그러던 대중가요계에 올해 예기치 않던 애수조의 옛 노래가 유행풍조를 일으킨 것이다. 구체적으로 3월 이후 각 방송의 가요「프로그램」은 옛 노래가 40%를 점하게 되었다. 대학가에서 즐겨 불리는 노래도 바로 이것들이라는 얘기다.
가요에 있어서의 이 같은 복고 경향은 물론 우리 나라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도 30년대의 유행가나 영화가 크게「히트」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의 복고 취향은 흔히 산업기술사회의 기계지배와 찰나적 쾌락추구에 대한 싫증을 반영하는 것이며, 어느 면에선「굿·올드·데이즈」(흘러간 옛 황금시대)를 기리는 낭만적이고 인문적인 향수 때문이라고도 설명된다.
우리의 경우도 물론 그런 설명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특이한 점은 이른바 흘러간 옛 노래가 일제식민지시대의 애수를 담은「니힐리즘」과 더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는 점이다.
「멜로디」나 가사가 이제는 모두 시대감각에 맞지 않고, 결코 건전하다고도 볼 수 없는 『「댄서」의 순정』등의 노래가 젊은 대학생들의 사랑을 받는다니 말이다. 방송금지곡으로 규제되기는 했으나 그 유행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것이 현상이다. 그럴수록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현상에서 탈피하는 성실한 노력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현상」은 반항과 자조가 범람하는 한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하기 때문이다.
대중가요가 흔히 퇴폐적이거나 애상적인 이유가 일제치하 또는 6·25전쟁이 빚은 민족수난의 상흔을 표출한 결과라고 한다면 그 상처가 크기 때문에 비감에 젖고 패배와 좌절에 빠지기 쉽다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그리하여 여기에 비윤리적이고 퇴폐적인 상업주의가 영합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중이 부르는 노래가 저속화하고 퇴폐해져서 대중을 좌절과 자학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간다면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통속성이 죄가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 문제다.
건설적이고 의욕적이며 생활에 생기를 불어 넣어줄「대중의 노래」의 필요성은 거기서 생긴다. 대중의 삶을 깊이 있게 새겨 가는 노래, 사회를 밝게 하고 생동케 하는 정신을 길러줄 노래가 요구되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근자 사회일각에서 추진되는 『건전가요 부르기 운동』은 좋은 착상이다. 그러나 도식적인 건전한 가사, 건전한 곡조를 강요한다면 그런 것들도 참다운 대중가요가 되기는 어렵다.
우리의 민요가락이나 판소리·굿거리 가락들을 현대감각으로 되살려 자유롭게 새로운 대중의 노래로 만드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흘러간 옛 노래에서 오늘의 애탄을 빗대어 되씹어 보기보다는 고유한 우리의 전통음악을 창조적으로 재생하여 민중의 노래로 승화시켜야겠다. 젊은 음악인들의 참신하고 의욕적인 창작노력에 기대를 갖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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