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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정부의 항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포드」 미국 대통령은 29일 비통한 어조로 과거 15년에 가까운 미국의 「인도차이나」개입에 종지부가 찍혔다고 선언했다. 다음날 「두옹·반·민」 월남 대통령도 「베트콩」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아시아」 대륙 일각은 공산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자유 월남 실함의 비극은 미국이나 「아시아」 각국에 다같이 값비싼 교훈을 던져 준다.
공산주의자들을 상대로 한 싸움은 군사적인 승리뿐만 아니라 정치전과 심리전에서도 기선을 제해야만 이길 수 있다는 생생한 교훈이다.
한때 모택동을 중국적인 토지 개혁론자 정도의 인물로 오인하여 중국 대륙을 공산주의자들에게 송두리째 넘겨준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또다시 호지명의 민족주의 이용 전략에 유효 적절한 정치적 역공세를 펴지 못했던 것이다.
월남의 정치인들 역시 영일 없는 권력투쟁으로 적전에서 국론 통일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대공 전쟁에 차질을 가져왔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하노이」는 이 같은 국론 분열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사이공」 정치권의 여러 정파를 상대로 각개 격파와 이간 책략을 써 왔던 것이다. 「디엠」 정권과 불교도, 「카톨릭」과 토착 종교, 군부와 민간 세력, 「티우」와 반「티우」파, 그리고 우익과 중도파 사이의 반목이 격화될 때마다 「하노이」는 『저 정권만 넘어뜨리면…』 『이 정권만 퇴진하면…』하는 식의 기만 전술로써 어부지리를 취해 왔다.
그러나 그들이 그처럼 감언이설로 회유하던 「두옹·반·민」 장군이 마침내 집권하여 휴전을 제의했을 때 「베트콩」은 서슴지 않고 그들의 이른바 「3파 연정안」이란 가식을 벗어 던지고 「사이공」 정권의 해체를 요구하는 공산주의자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더군다나 비극적인 사실은 국제 평화 유지 기구로서의 「유엔」 무력이 인지 사태를 통해 너무도 선명하게 부각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동난·중동 사태·「키프로스」 사태 때만 하더라도, 전란의 국지화와 평화 회복을 위해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음을 실증한 이 국제 기구가, 인지 사태에는 거의 침묵과 방관을 일관했었다는 사실은 그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유엔」의 세계 평화 기구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점에서 침략전쟁의 돌발시 「유엔」과 특히 그 안보리의 기능 강화 문제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있어 마땅할 것이다.
이제 앞으로의 문제는 「인도차이나」 공산 판도 내부의 동향과 소·중공의 경쟁상일 것이며, 아울러 「아시안」 제국의 전도와 미국 태평양 방위 체계도 정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새로운 전망이라 할 것이다.
「인도차이나」는 과연 단일 국제 공산권으로 응집될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되기 이전에 「하노이」파·중공과·중도좌파 등의 각 정파가 암중모색의 유영을 반복할 것인가. 또 월남족·「크메르」족·묘족·고산족·화교 등 각 종족간의 뿌리깊은 단절과 불교·천주교·「카오다이」교 등 각 종파간의 이질감과 자위 의식은 무신론자인 공산주의자의 지배와 겹쳐 어떠한 진통을 겪어 나갈 것인 가도 문젯거리다.
월남 역사의 기조라 할 북척·남척간의 전통적인 이질감과 관련해 「베트콩」과 「하노이」 간의 미묘한 갈등의 「뉘앙스」도 일단은 정밀한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미 「베트콩」 대변인이 표명한 『비동맹 노선』이란 또한 어느 만큼의 위선성을 가진 것인가. 가장 확실한 것은 「하노이」가 소련의 무기 공급으로 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에 중공이 「하노이」-「모스크바」 밀착에 대단히 경계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복합 요소들의 존재를 전제할 때 자유세계로서는 그네들의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역이용하여 일종의 이이제이의 외교 전략을 써 볼 수는 없는 것인가.
그러나 지금의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미 두 나라가 「아시아」 방위에 있어서의 한국의 기본적인 중요성을 거듭 확인하고, 그 실효화를 촉구하기 위한 대담한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지 사태 이후 「포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조야에서 새삼 한·미·일 상호 방위 체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전향적인 자세로 새로운 사태에 대처할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 나라로서는 불행 중 다행한 사태라고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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