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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 개정안 위헌" … 뒤늦게 심각성 깨달은 새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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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27일에도 전체회의가 무산돼 회의실에 불이 꺼져 있다. 전날 통과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새누리당 미방위원들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해 파행을 겪고 있다. [김성룡 기자]

27일 오전 9시30분.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직후 “큰일이 났다”며 자리를 떴다. 그의 사무실엔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와 새누리당 소속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의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법 개정안 때문이다.

 전날 밤 미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합의된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뿐 아니라 민영방송에도 ‘사용자와 종사자가 동수로 참여하는 편성위원회’를 두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과 달리 민영방송에 대해 법으로 편성을 규제하자는 발상은 언론자유의 침해이며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특히 새누리당 미방위 의원들이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들고 일어났다. 김기현·이상일·이우현 의원 등은 기자회견을 열어 “방송법 개정안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이우현 의원은 “민간 방송사들의 편성권까지 법으로 규제한다는 것은 민간의 편성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특히 공영방송이 아닌 민간방송의 편성은 자율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고 헌법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이상일 의원도 “민간방송에까지 법으로 규정한 강제성을 확대시키는 것은 체제를 과거로 돌리려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정치색이 짙은 노조에 의해 방송의 편성 내용이 좌지우지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반발이 확산되자 한선교 미방위원장은 “원내대표가 결정할 문제”라며 발을 뺐고, 조해진 간사도 “(5명인) 여당 법안소위 의원뿐 아니라 다른 미방위원들도 위헌 가능성을 우려해 반대 입장을 개진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도 원내대표실을 찾아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가세했다.

 2시간여 동안 대책을 숙의한 최 원내대표는 개정안이 위헌 소지가 있는 만큼 민주당과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수정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재협상은 결렬됐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계류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하고 심사까지 마친 상태에서 약속을 뒤집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당초 합의했던 안이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초 10시로 예정됐던 법안심사소위와 11시 전체회의는 열리지 않았고 본회의엔 미방위 소관 법안이 한 건도 상정되지 못했다.

 미방위는 지난해 7월 2일 이후 법안을 한 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KBS 사장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민주당이 이를 다른 법안 처리와 연계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자력 안전법 , 전파법,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등 90여 개 법안 처리가 발목이 잡혔다.

 방송법 개정안의 소위 합의는 교착 상태를 풀어보려는 여야 원내대표의 중재노력의 산물이었다. 민주당이 요구한 방송법 개정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다른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패키지 딜’에 새누리당이 합의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미방위 의원은 “지도부가 그동안 절대로 양보해선 안 된다던 위헌 소지의 방송법을 돌연 합의해주고 나머지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입장을 전달해왔다”고 말했다.

 미방위에는 현재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개인정보 보호법 등과 민생법안이 계류돼 있다. 이 중엔 박근혜 대통령이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던 법안도 많다. 지난 17일 미래부 업무보고에서 박 대통령은 “스마트폰 가격이 시장과 장소에 따라 몇 배씩 차이가 나선 안 될 것”이라며 단통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었다.

글=강태화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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