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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붕어빵' 이력서 없애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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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지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지상
경제부문 기자

금융회사 인사 담당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지원자들 스펙은 훌륭한데 개성이 없다”는 것이다. 학벌·금융자격증·인턴십·토익점수 어느 하나 빠지는 데가 없다. 하지만 요모조모 다들 비슷한 모습이다. 국책은행 인사 담당자는 “신입사원 면접을 갔더니 다들 대학교 동아리 리더였고, 어학연수에서 어려움을 겪었더라”고 푸념했다.

 기자 역시 취업 재수를 했다. 중앙일보에 입사하기 위해 두 해를 투자했다. 첫해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낙담이 컸다. 대학교 학보사 기자, 신문사 인턴, 교환학생 같은 ‘스펙’을 다 갖췄는데 왜 선택받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문제는 바로 그 ‘스펙’에 있었다. 당시 면접위원이던 한 선배는 다음 해 입사한 기자에게 “쉬지 않고 유창하게 스펙을 나열하던 모습이 외운 티가 나 뻔해 보였다”고 지적했다. 당시 ‘1분 자기소개’는 “저는 ‘꿈·끼·깡’을 가진 사람입니다” 같은 말로 채워져 있었다. 당시 취업준비사이트에서 ‘필수 성공 키워드’로 유행하던 것들이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달달 외워 간 게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기자의 경험은 요즘 채용시장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많은 취업준비생이 구직의 간절함 때문에 스펙에 집착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에게 있지 않다. ‘취업절벽’은 젊은 청춘들이 만든 게 아니다. 스펙이 중요시된 것도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붕어빵 같은 이력서’를 보고 싶지 않다면 기업부터 변해야 한다. 현대카드 N모 이사는 지방 사립대학교를 졸업했다. 보통의 금융사라면 서류전형을 통과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N 이사는 네이버에서 UX전문가로 인정받은 뒤 현대카드로 스카우트됐다. 묵묵히 전문분야를 쌓고, 이를 인정해 준 회사가 있어 30대에 금융사 임원이 된 것이다. 이제 청년에게 짜맞춘 듯한 ‘스펙’보다 깊고 넓은 경험을 응원해야 한다. 기업의 인재관과 인사철학이 바뀌어야 ‘스펙 과잉’이 사라진다.

이지상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