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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말의 새 불씨…형법 개정안|풍파 몰고온 "사대 언동" 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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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여당이 극비리에 손 됐던 「중요 입법안」으로 이른바 「사대적 언동」을 규제하는 형법 개정안이 18일 국회에 전격 제안됐다.
형법 개정안은 야당 및 재야 인사들의 활동을 위축시킨다해서 일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다.
지난 73년 「10·17」 이후 김대중 전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미국과 일본을 왕래하면서 민주 회복을 제창하고 현 정권을 비판했을 때 정부와 여당은 이 언동이 우방과 교포들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했었다.
김영삼 신민당 당수가 지난해 방미해서 그곳 정치 지도자들을 만나거나 교포들에게 연설하는 가운데 정부 비방이 많았다고 여당 쪽에서는 분석했으며 또 그의 개헌 주장을 빈번한 외신 기자 회견을 통해 피력했고 서울 주재 외교관들과도 빈번히 접촉했다.
공화당과 유정회는 지난해 11월 야당이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원외 투쟁을 벌일 때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의 강화 방침과 함께 사대주의적 언동에 대한 규제 문제를 제기, 여야간의 사대주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일이 있다.
공화당은 이 무렵 정책 연구실을 통해 사대 언동을 규제하는 특별법을 기초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특별 법안의 기초는 정기 국회의 폐회와 함께 유산되었고 그 취지를 담은 형법개정안이 「2·12」 국민 투표 후에 입안된 것으로 전해 졌다.
이번에는 공화당이나 유정회의 정책 기구를 통하지 않고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입안 한 점이 특이하다. 장영순 법사 위원장과 한태연 의원 (유정)이 성안, 지난 13일 총리 공관에서 있었던 정부·여당 연석 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여당은 이밖에 국내 언론 사태와 관련된 것, 신부·목사 등 비 정치인의 정치 활동과 관련된 입법 문제도 검토한 것으로 보이나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다.
형법에 신설된 내용이 외국인에게 국가와 헌법 기관에 대한 모욕, 비방, 그에 관한 허위 사실 유포 등으로 국가의 안전·이익·위신에 해를 끼친 경우 처벌하는 것이어서 이러한 ①발언 ②기자 회견 ③편지 ④전화 ⑤연설 ⑥기고 등은 모두 규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헌법 기관은 대통령·국회·법원·감사원 등이다.
규제 대상에서는 특히 야당 지도자들의 국내외 외신 기자 회견과 해외 교포를 상대로 한 연설 등이 포함 될 수 있다.
신민당이 즉각 「언론을 봉쇄하려는 악법」으로 규정, 저지 투쟁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야당에서는 개정안을 근본적으로 반대할 뿐 아니라 실제 운용되는 경우 확대 해석할 여지가 많다고 보고 있다.
김인기 의원은 국가와 헌법 기관에 대한 「비방」이나 「모욕」에 대한 해석이 일방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으며, 김형일 원내 총무는 국가에 해를 끼친 결과 범 뿐 아니라 「해할 우려가 있게 한 자」까지 처벌하도록 규정한 것은 외국인에 대한 발언을 모조리 막으려는 저의라고 했다.
그러나 제안자인 박준규 공화당 정책위 의장은 『「비방」을 금지한 것이지 비판은 괜찮다』는 설명이다.
박 의장은 이 법의 취지가 주체 사상을 고취하려는 것이라고 말해 다분히 「회고적 법안」임을 시사했다.
법조문이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도 문젯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형량에 있어서 같은 형법에 외국 원수에 대한 모욕죄는 「5년 이하」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 위원장은 『입법 취지가 어디까지나 사대주의 풍조를 시정하려는 것이지 내국인끼리에는 비중을 안 둔 것』이란 해석.
여당은 대통령의 모욕을 금지한 「프랑스」 출판법과 대통령에 대한 명예 훼손죄를 규정한 서독 형법에서 입법례를 들고 있으나 이 두 법은 모두「3개월 이상」의 경징역형을 과하고 있다.
회기말의 불씨가 된 이런 법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여당 의원도 있는 것 같다. 사대주의를 법으로 다스리려는 자체에 대한 회의로 보여진다.
이 법이 제정되면 우리 나라에 주재하는 외국 특파원은 사실상 취재가 어려워 철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조남조 기자>

<각계의 반응>
죄형 법정 주의에 저촉
▲이세중 변호사-법문은 「기타 방법」,「해할 우려」등 기준이 극히 모호하다.
이것은 사전에 범죄 내용을 엄격히 정하여 정치 권력이나 법관이 마음대로 처벌하는 내용을 정하는 것으로 죄형 법정 주의에 저촉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확대 적용이면 인권 침해
▲송건웅 변호사-법익을 침해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이른바 위험 범도 법이 규정하면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형법 개정안은 「기타 방법」 등으로 규정한 무한한 확대 적용이 가능하게 돼 있으며 이것은 부당하게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형법이 규정한 범죄를 처벌할 목적 이외에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형법의 보장적 기능을 고려한다면 이번 개정안의 입법에는 검토가 있어야할 것이다.
법률로서 비정상적
▲이건호 이대 법정 대학장 (형법학 전공)-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이번 형법 개정안이 법률로서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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