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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대신 특기 … 현대카드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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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 ‘스펙’을 따지지 않는 인재 채용에 나선다. 보수적인 금융권에선 첫 시도다.

 26일 현대카드에 따르면 이 회사는 기존에 해오던 채용방식(일반전형) 외에 올해부터 특별전형(special track)을 도입하기로 했다. 자격증·인턴십·어학연수처럼 소위 ‘스펙’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자신만의 특기나 장기가 있는 사람에게 입사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특별전형은 다음 달 있을 인턴 공개 채용부터 시작돼, 올해 신입사원 공개채용에도 적용된다. 금융업 특성상 필요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일반전형은 그대로 운영하되 다양성 확보를 위해 특별전형을 더한 체계다.

 특별전형에서 눈여겨보는 건 자기소개서다. 예컨대 물리학 연구에 빠져 있던 물리학 전공자라면 자신의 연구경력을 자세히 소개하면 된다. 금융 자격증은 따지 못했지만 그 못지않은 경험을 지녔음을 설명할 기회를 충분히 준다.

지원자 개개인의 특기와 경험에 맞춰 평가도 이뤄진다. 이른바 8대 취업스펙(학벌·학점·토익·어학연수·자격증·봉사·인턴·수상경력)이나 금융3종 자격증(펀드·증권·파생상품투자상담사) 같은 금융권 채용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잣대가 끼어들지 않는다. 현대카드가 새로운 인사실험을 기획한 건 지난해 공채에서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세계 5대 광고제에 입상한 경력이 있는 지방대 출신 지원자가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자신만의 특장점을 가진 인재들을 놓치고 있진 않나’하는 반성에서 인사제도의 변화를 꾀했다.

이윤석 현대카드 HR실 상무는 “기존의 채용 절차로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인턴 경력도 없는 스티브 잡스는 아예 서류전형조차 통과할 수 없다”며 “어학연수·토익·자격증 등 제복을 입듯 ‘같은 스펙’을 만들어 나가는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신선함을 불어넣을 창의적인 인재를 발굴한다는 목적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튀는 지원자를 뽑아주는 건 아니다. 특별전형도 일반 공채에 포함되기 때문에 서류전형·인적성검사와 같은 채용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입사원인 만큼 전문성 자체보다는 그 특기를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본다.

이 회사 이석호 커리어개발팀장은 “괴짜나 기발한 사람을 뽑고자 하는 게 아니다. 특별전형 지원자들이 자신의 특장점을 갖기까지 투자한 시간과 열정, 몰입력·책임감 등을 중점적으로 볼 것”이라고 밝혔다.

경력을 속이거나 뻥튀기하는 지원자를 걸러내기 위한 절차도 둔다. 사내외 인사로 구성된 특별 면접전형위원들이 지원자의 경력사항이 사실인지 확인한다. 만약 건축 전공 지원자가 건축 관련 논문을 작성했다면 회사 내부 건축전문가가 면접을 보는 식이다.

 스펙을 따지지 않는 인사실험은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의 철학이기도 하다. 정 사장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파는 것(job selling)’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일들이 바뀐다. ‘인재에게 현대의 일자리를 설득하기’가 우리의 정의”라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과거에도 새로운 인사방식을 도입했다. 2007년부터 사내 인력시장 제도를 만들어,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 하는 직원들이 자신을 마케팅하거나 각 부서가 필요한 인재를 공모하는 장을 만든 바 있다. 현대카드와 캐피탈 퇴직자중 재입사 의향이 있는 우수 인력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연어프로젝트’도 지난해부터 운영중이다.

올해 1월엔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각 부서가 부스를 배치해 놓고 자신의 부서를 홍보하는 ‘직업 박람회’를 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신입사원의 80%가 3지망 안에 드는 희망부서에 배치됐다.

이지상 기자

현대카드가 해온 인사 실험
자료: 현대카드

◆ 커리어마켓
2007년부터 시행된 사내 인력시장 제도.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 하는 직원들이 ‘오픈커리어 존’에 자신을 등록하고 마케팅함. 각 부서가 필요한 인재를 공모하는 ‘잡 포스팅 존’도 있음.
◆ 연어프로젝트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퇴직자 중 재입사 의향이 있는 우수인력에게 재입사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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