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한 위험 방치…무책임이 빚은 참사|신대방동 축대붕괴사고 원인·상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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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9일 새벽 17명의 여공이 압사한 관악구 신대방동 옹벽도괴 사고는 누구나『위험하다』고 조마조마하게 여기던 곳에서 바로 일어났다. 신대방동 옹벽도괴사건은 높이 10·8m의 옹벽 위에 살던 사람도, 또 이웃에 살던 사람도 모두가 한결같이 입버릇처럼『무너질 것 같다』고 걱정만 했을 뿐 아무도 책임지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설마 하다가 빚은 참사였다. 또 옹벽 속에 하수도 물이 스며들어 옹벽이 갈라졌다고 주민이 여러 차례 신고했는데도 동회·수도사업소 등 관계당국은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기숙사조차 무허가로 눈감아 준 사실이 밝혀져 참사 때마다 들통나곤 하는「눈가림행정」의 악폐를 또다시 드러냈다.
경찰은 10일 옹벽의 붕괴원인을 옹벽자체가 당국의 허가 없는 날림공사로 불안전했던 데다 옹벽 위의 방홍규씨(52)와 홍기숙씨(33)집 하수도의 누수가 옹벽 속에서「워터·탱크」현상을 빚어 해빙이 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밝혀 냈다.
높이 10·8m, 가로 40m의 이 옹벽은 68년11월 엄기주씨(57)가 당시 산이었던 이 일대를 J제약회사로부터 매입, 택지조성을 하면서 무허가로 쌓은 것으로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국으로부터 한번도 위험진단이나 지적을 받은 일이 없다.
엄씨는 이때『2m이상의 옹벽을 쌓을 때는 철근을 넣어야 하며 옹벽에 배수구멍을 내야 한다』는 건축법시행령(1백87조) 규정마저 무시,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배수구멍도 내지 않았다. 게다가 「1·2·4비율」의「시멘트」·모래·자갈배합도 4년만에 금이 갈 정도로 엉성하게 배합, 흙산을「싸 바르기」식으로 둘러쳤다. 또 고정하중과 토압(토축)을 계산, 지탱 력을 주기 위해 쌓게 돼 있는 단계 식 축조도 제일아랫부분의 계단 폭만 30m일뿐 나머지 4개 단의 폭은 모두 10㎝밖에 안돼 거의 수직 벽이 안고 있는 위험성과 다를 바 없었다.
이 옹벽에는 72년부터 중간부분에 20m쯤 너비 3∼5㎜의 금이 생겨 항상 벽 밖으로 물이 흘러나왔으며 겨울에는 높이 2m쯤의 얼음이 얼었다 녹았다 해 이미 이 때부터 도괴의 위험성을 안고 있었던 곳.
이 때문에 정풍물산 공장장 박춘덕씨(48)는 73년 3월, 74년 3월과 7월 등 세 차례에 걸쳐 신대방 동사무소에『옹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전화로 신고까지 했었으나 동회에서는 한번도 나와 본 일이 없었고 74년 5월에는 방씨와 홍씨 집 수도가 터진 것 같다고 수도사업소에 연락했으나 한 차례 나와 보고만 갔을 뿐이었다는 것.
무너진 옹벽 위의 집주인 방홍규씨(52)의 부인 최범순씨(44)도 69년 8월 전주인 정동철씨(45)로부터 살 때 옹벽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돼 망설였으나 정씨가『무너지면 내가 책임진다. 절대 안전하니 걱정 말라』는 바람에 속아서 사들였다가 변을 당했다고 했다.
떼죽음을 당한 정풍산업 기숙사(32평)도 무허가 건물로 68년 준공됐으나 당국으로부터 위험진단이나 지적을 받은 일이 없다.
옹벽 위의 두 집 하수구와 수도 「파이프」가 옹벽 쪽으로 묻혀 있었던 점도 건축상의하자와 무관심이 엄청난 비극을 부른 원인이 됐다. 두 집의 하수구는 직경 10㎝의 토 관으로 옹벽 쪽 지하 50㎝쯤에 묻혀 있어 경찰은 이 토 관의 연결부분에서 물이 스며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고는 한마디로 무허가 날림공사를 한 시공자의「무책임」, 세 차례나 위험하다는 신고를 외면한 당국의「무관심」, 위험한 줄 알면서도 옹벽 밑에 기숙사를 차린 고용주의「무책임」이 빚은 예측된 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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