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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그 입지의 현장을 가다|반공포로출신 재인 실업인 지기철씨(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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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뉴델리=김동수 특파원】외무성의「자가트·메타」아주 과장(현 부 외상)을 붙들고 통사정했다. 처음 인도에 왔을 때부터 포로문제 담당관으로 있던 그는 애초에는 쌀쌀하기 그지없었으나 한 5년 지나는 동안 흉허물없이 돼 버린 터다.
농림당국과 교섭하여 며칠만에 3천「루피」를 마련해 준다. 나이 서른 일곱이 되도록 돈을 꾸어 쓰기는 처음이다.
염치 불구하고 병영 안 막사 옆에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닭장이라고 엮어 놓고 병아리 1천7백80마리를 풀었다. 이게 사람 눈밖에 나지 않을 리 없다. 소령 계급의 부대장이 와 보고 깐죽깐죽 추궁한다. 이치로야 할말없지만 사리를 따지다가는 이도 저도 못할 판이다.

<병아리 천8백 마리 구입>
얼굴까지 붉혀 가며 대들었지만 원칙을 내세우고 걷어치우라는 데는 도리가 없다. 육군 사령관인「티마야」장군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포로관리 임무로 한국에 파견된 인도군 사령관을 지낸 인물이다.
지씨가 88명을 대표해 왔던 탓으로 그를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티마야」장군의 호의가 지씨를 궁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두 주일 가량 지나 병아리가 크니 주위의 눈총도 눈총이지만 비좁아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게 됐다. 그러던 중 성당 소유 토지로 노는 땅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시가지에서 벗어난 곳도 아니고 널찍하여 안성맞춤인 듯 했다. 성당 신부를 통해 주교에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늘 지씨의 딱한 처지에 관심을 갖고 있던 교회측에서 임대형식으로 토지를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임대료래야 1년에 1천「루피」(8만원)라는 헐값이다. 거 저나 마찬가지다. 이때가 59년 3월.
30만 평방「야드」(7만평)나 되는 땅이다. 막연히 넓히겠다는 생각만 하다가 막상 손을 대려니 마음은 급한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양계만 할 게 아니라 넓은 땅을 몽땅 이용해야겠다는 욕심도 앞선다.
어쨌든 당장 닭장을 옮기는 게 급하다. 그것도 삵쾡이와「코브라」가 득실거리는 허허벌판이니 나뭇가지로 얽어맬게 아니라 토담이라도 쌓아야 할게 아닌가. 사람도 한데서야 잘 수 없으니 어떻게 하늘 가릴 방도를 차려야 할 만이다.
움막 짓고 햇볕 가리는 데만 나흘 걸렸다. 첫날밤은 돌 바닥 위에서 지새웠다. 모기의 극성으로 눈을 붙일 수가 없었던 탓이다. 나흘 뒤에는 바위에다 나무를 얽어 평상 모양의 침대를 만들 수 있었다.
여남은 사람의 품을 사서 흙벽돌을 만들어 닭장을 지었다. 병영의 병아리를 옮기고 나니 마음만이라도 뿌듯하다. 이런 기분에 젖어 든 것도 잠깐, 수중에 돈 한 푼 없다. 일꾼 품삯에 사료는 고사하고 자신이 먹고 살 양식을 구할 길이 없다.
지씨에게는 복이 있나 보다. 병영 시절 사귄 주보 관리자「사물라」란 사람이 딱한 사정을 보다 못해 푼푼이 모아 둔 3천「루피」를 융통해 준다. 그러나 무작정 돼지·젖소 등을 사들이다 보니 이 3천「루피」도 잠깐이다.

<어려울 때마다 구세주가…>
닭장에 들어서면 때를 거른 병아리들이 머리끝까지 날아들며 삐약 거린다. 자신도 끼니를 걸렀지만 죄스런 마음에 견딜 수 없다. 일꾼들에게 들판의 풀이라도 썰어 먹이라 이르고는 밖으로 나왔다.
자전거를 끌고 사료를 구하겠다고 나섰다. 어디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 가야하나』-. 하염없이「페달」을 밟으며 10∼20km는 예사다. 실성한 사람처럼 헤매다 보면 또 성당에 들어가 실컷 울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제단 앞에 무릎꿇고 흐느끼는데 누가 어깨를 두드린다. 「재크」라는 이름의 본당 신부다.
구호물자로 미국서 들여온 밀과 강냉이 중에 물이 들어 못쓰게 된 강냉이가 있단다. 지씨에게는 어려울 때마다 이 같은 도움이 있는 게 기적같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사람 양식을 해결할 길이 막막하다. 일하다 보면 지쳐 쓰러져 잠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배고픔에 못 이겨 잠이 깬다. 닭장에 들어가 마침 산란이 시작된 달걀 2∼3개로 끼니를 때운다.
병아리를 키운 지 꼭 넉 달 열 이레만에 산란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농장을 경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개울을 끼고 있는 터라 목초와 채소를 가꾸면 될 성싶다. 도둑도 막고, 밤이면 활개치는「코브라」도 막을 겸 개를 키우는 한편 주위에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번 돈은 모두 농장에 재투자>
그러자 엉뚱한 데서 반발이 들어온다. 어느 날 저녁 주위 동네사람 2백 여명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울타리를 부수고 달려든다. 지씨가 오기 전에는 자기네들의 소도 놓아먹이고 배설 장으로 이용하던 곳이 막혀 버리니 쫓아내겠다는 심산이다.
전에도 이따금 산발적으로 몰려와 티격태격한 적은 있었지만 사나운 개 두 마리의 도움으로 쫓아내곤 했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지씨를『개 사람』이라고 불러오던 터다.
지씨도 몽둥이를 들고 앞장서 오는 몇 사람을 두들겨 팼다. 인도 사람들이 모질지 못해서인가 그 많은 사람들이 주춤한다. 악귀같이 대항하는 지씨에게 기가 질렸는지도 모른다. 다음날 지씨는 외무성을 찾아가 밤에 있었던 일을 항의, 경찰을 끌어들여 수습할 수 있었다.
차차 자리가 잡혀가며 수입이 조금씩 손에 들어온다. 벌어들이는 돈을 다시 모두 농장에 쓸어 넣었다. 돼지를 더 사들이고 채소를 가꾸었다. 일꾼도 25명으로 늘렸다. 채소밭의 풀을 베어 내고 나면 1주일이 못 가 다시 무성해져 무던히도 애를 먹었다. 그런 한편에 목초를 베어내고 나면 금방 자라 심심찮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1년이 지나고 나니 10만「루피」(8천「달러」)가량 수입되는 농장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달걀 수입만도 하루 6백∼7백「루피」쯤 되어 지긋지긋한 사료 걱정은 안 해도 좋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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