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실수 얼버무리는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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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청와대는 지난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장관급인 부패방지위원장에 이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를 임명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반부패 문제 등에 조예가 깊고 적극적 사회활동을 펼쳐온 개혁적 인사"라는 발탁 이유도 곁들였다.

그러나 이 인선은 이틀 만에 취소됐다. 그것도 청와대가 취소를 공식 발표한 게 아니라 관계자들의 전언을 통해서다. 관계자들은 "본인이 고사했다더라"는 말만 전했다.

당연히 각종 추측이 꼬리를 물었다.

인선 취소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21일에도 청와대는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한 정찬용 인사보좌관은 기자들과 만나 "임명했다 취소하는 일도 있는 것"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그는 "李교수가 일본에서의 강의 일정을 취소하기 어려운 것 같다"면서 "후임자를 물색해야 하는데, 주말에 놀아볼까 했더니 다 글렀다"는 말을 덧붙였다.

특유의 농담식 어투였다지만 새 정부가 강조하는 부패척결 업무를 맡을 장관급 인선이 차질을 빚은 데 대한 1차 책임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었다.

이날 송경희 대변인의 브리핑에서도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宋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에 "鄭보좌관이 말한 대로 '있을 수도 있다'는 정도"라며 "발표 시기가 지연되면서 일이 꼬인 것 같다"고 했다.

"발표하기 전에 문제점 등을 따져보았느냐"는 등 질문이 계속되자 宋대변인은 출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끔하게 처리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면서 브리핑을 서둘러 끝냈다.

청와대가 말끔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은 검증절차라는 후문이다. 李교수에 대한 세간의 평판에만 무게를 둔 나머지 그가 부패방지위원장으로 적격인지 여러 측면에서 검증하는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선 과정에서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등 잘못이 있다면 제대로 사과하고 설명하는 게 옳다. 어물쩍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 것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태도다.

김성탁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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