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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영화「붐」…작가들은 이렇게 본다|「문학작품의 영화와」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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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4년 초 영화『별들의 고향』(최인호 원작·이장호 감독)의 기록적인 흥행 성공이 몰고 온 문학작품의 영화화「붐」은 75년에 접어들면서「피크」를 이루어 최근 촬영을 끝냈거나 촬영, 혹은 기획중인 영화만도 20편에 달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영화의 기본적 바탕을 이루는「시나리오」의 부재 현상을 뜻하는 것이지만 그와는 다른 관점에서 문학작품의 영화화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작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논란의 첫 번째「포인트」는 문학작품을 영화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원작의 주제, 혹은「스토리」가 전혀 다르게 표현됐을 경우 그 영화에 있어서의 원작의 뜻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대표적「케이스」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어제 내린 비』(최인호 원작·이장호 감독)와『영자의 전성시대』(조선 작·원작·김호선 감독)이다. 『어제 내린 비』는 같은 최씨의 작품이지만 『내마음의 풍차』를 상당부분 끌어다 사용했고『영자의 전성시대』는 마지막 부분이 원작과는 전혀 상반되게 표현됐기 때문이다.
원작의 주제, 혹은「스토리」의 일부가 영화 속에서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 사례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작가들이 옳지 않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최인호씨는 원작의 영화화권을 넘긴 이상 각색하는 과정에 끼어 들기는 싫지만 되도록 원작의 분위기를 살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으며, 조선작씨는『문학과 영화가 주는 감동이 별개라고 생각할 때 관객과 독서 층을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제, 『그러나 원작이 갖는 독특한 문학적 향기는 강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강신재씨도 원작의 분위기가 영화 속에 그대로 살아 있지 않을 때 불쾌하다면서 영화화권을 넘겼더라도 각색하는 과정에 원작자의 발언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노진 기행』『야행』등의 원작자이며 스스로 「시나리오」도 쓰고 있는 김승옥씨에 의하면 소위 성공적인 문예영화란 가령『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어니스트·헤밍웨이」원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마거리트·미첼」원작)에서 보는 것처럼 원작의 향취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경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문예영화에서 많은 문젯점이 파생하는 까닭은 영화와 문학을 전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풍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시나리오」는 그 자체가 문학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을 영화화하는 경우「시나리오」는 문학의 종속물쯤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작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오히려 원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반대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한편 송숙영씨도 자기 원작의 각색된「시나리오」를 보고 두 차례나 개작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어 아예 버린 작품 취급을 해 버렸다고 한다.
요컨대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영상화할 수 없으면 아예 영화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 원작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주요섭 원작), 『노진 기행』(김승옥 원작), 『토지』(박경리 원작)등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고서도 성공을 거둔 영화가 많이 있지만 최근 이른바 문예영화의「붐」을 타고 제작되는 많은 영화들이 원작과 동떨어진 영화를 만들고 있음은 적지 않은 문젯점으로 지적돼야 할 것 같다. 영화의 분위기가 원작의 그것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조선작·김승옥씨가 지적한대로 ①영화적인 감동을 주기 위하여 ②검열 문제 때문에 ③제작자의 상업성 때문에 등 몇 가지로 집약되지만 근본적으로 우수영화를 지향하는 제작자의 집념이 문학 작품만을 고집하는 것은「오리지널·시나리오」의 부재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러한 영화풍토에서 무조건 원작의 영화화 길을 팔아 넘기는 작가들의 자세도 검토돼야 한다는 것이 문단 일각의 견해이기도 하다.
현재 촬영, 기획중인 작품은『극락조』(김동리), 『서울의 지붕 밑』『숲에는 그대 향기』(이상 강신재), 『삼포 가는 길』『장사의 꿈』(이상 황석영), 『조선 총독부』(유주현), 『고가』(정한숙), 『북간도』(안시영), 『연인들』(송숙영), 『바보들의 행진』(최인호)등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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