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불꽃 투혼에 팬 많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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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본의 영웅' 이인영.

오는 29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미국의 이반 케이플스(30·세계랭킹 3위)와 세계타이틀 전초전을 갖는 여자프로복서 이인영(32·세계 6위)은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보는 스타다.

이인영은 지난주 택시를 타고 안양의 언니 집에 갔다. 요금 8천원을 건네는데 운전기사가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는 "요금 대신 사인 한장 해주세요"라며 종이를 뒷좌석으로 내밀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많은 사람이 알아보고 말을 건넨다. 돈을 안받겠다는 식당도 꽤 있다.

지난 겨울방학 때 이인영이 소속된 산본체육관에서는 즐거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복싱을 배우겠다고 체육관을 찾은 사람들이 초·중·고교생을 중심으로 1백10명이나 됐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20~30명이 고작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인영 선수의 불 같은 투지에 반했다"고 말했다. 그 중에는 미용실에서 일하며 프로복서를 꿈꾸는 여성도 있었다.

29일 벌어지는 이인영-케이플스 대전의 오픈경기는 전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최요삼의 재기전이다. 한국 복싱계에서 이인영이 차지하는 자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20일 경기도 군포의 산본체육관에서 훈련에 여념이 없는 이인영을 만났다. 유난히 삐뚤어진 코를 자꾸 쳐다봤더니 "국내 랭킹전 때 상대의 팔꿈치에 맞았다"고 말했다. 코뼈가 주저앉은 것이다. 남들은 코를 세우는 수술도 한다는데,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제 꿈을 향해 달리다 얻은 상처예요. 영광의 상처니까 오히려 자랑스럽죠."

한때 '국민 스포츠'로 불렸던 프로복싱의 인기는 땅에 뚝 떨어졌다. 국내엔 세계챔피언이 한명도 없다. 사람들은 이제 부와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이어트를 위해 체육관을 찾는다. 그래서 여자복서 이인영에게 거는 복싱계의 기대는 작지 않다.

이인영의 인기는 거품이 아니다. 그는 '미모의 복서'도 아니고, 이렇다 할 홍보도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인기를 누리는 것은 경기의 콘텐츠가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의 복싱은 결코 이벤트성 눈요기가 아니다.

그는 매일 새벽마다 10㎞를 달린다. 그것도 산길을 택해 달린다. 남자 복서도 매일 8㎞면 지친다는데-. 주저앉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버틴다. 자신을 꺾지 못하면 남도 꺾을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의 스파링 상대는 언제나 남자선수다. 그는 "일단 링 위에 오르면 남녀가 따로 없다. 단지 복서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복싱을 시작한 지 이제 1년6개월. 그 짧은 기간에 파죽지세로 한국챔피언에 오른 이인영은 세계타이틀에 도전하기 위해 한국챔피언 타이틀도 내놓았다. 이인영은 5월 말이나 6월 초 세계챔피언에 도전할 예정이다.

산본=백성호 기자

◇이인영은=

▶나이:1971년생(32세)

▶광주 세종고 졸

▶키:1m59㎝

▶체급:플라이급(52㎏)

▶프로전적:5전5승(2KO)

▶스타일:양훅을 앞세운 인파이터

▶복싱 경력:1년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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