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X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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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1976년은 새 대통령을 뽑는 해이다. 공화당 출신인 현「포드」대통령은 이미 출마를 선언한바 있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그러나 아직도 암중모색중이다.
이런 와중에「헨리·잭슨」상원의원이 민주당의 지명전에 부상되고 있는 것은 관심을 모은다. 그는 과거의 정치이념은 어찌되었든 지금은「포드」와 대조적인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한국에 대한 그의 입장이다.「잰슨」의원은 이미 한국의 인권문제 등에 신랄한 비판을 가해 왔었다.
그가 만일 지명을 획득하면 한국문제는 미국선거의 한「하트·이슈」로 등장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잭슨」은 올해 62세의 노정 객이다. 미국의「매스컴」들은 그가 15년쯤은 젊어 보인다고 말한다. 그의 선조는 1880년대에「노르웨이」에서 미주로 이주했었다. 부친은「시멘트」공사장의 보잘 것 없는 노동자였다. 하지만 모친의 가정교육은 몹시 엄했다. 자식들의 옳고 그름을 예외 없이 분별해 주었다.
「잭슨」의 어린 시절은 가정형편이 그렇듯이 불우했다.
10대엔 신문배달소년이었다. 하지만 그 무렵부터 야심이 대단해 신문사로부터 근면 상을 받기도 했었다. 그가 신문을 배달하던 지역은 「홍등가」였다.「잭슨」소년에겐 이것이 더할 나위 없는 교훈이 되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할 때 졸업생답사에서 사회의 불의를 설파했었다.
「워싱턴」주립대학에 진학했다. 법학도가 된 것이다. l935년, 이 대학을 졸업할 때 그는 3위였다. 지체 없이 고향인「에버리트」로 돌아갔다. 그는 소년시절의 그 어둡던 일들을 회상하며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가 되었다. 도박·매음·밀주동이 횡행하는 하층사회의 불의를 그 젊은 검사는 보아란듯이 씻어냈다. 그가 하원의원이 되는 것은 이런 형편에선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지 3년 만이었다.
1952년 그는 상원의원에 출마, 공화당의 보수파의원을 쓰러뜨렸다. 오늘까지 그는 34년 동안의 의원생활을 계속하고 있다.「잭슨」은 자신을『이질적인 것들의 혼합체』라고 말한다. 「이데올로기」를 초월한다는 말도 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의 신문들은 최근 그를『군산복합체의 악마』, 『「시애틀」시의 망령』, 『유대인의 충복』이라고 조롱하고 있다. 사실 그는 유대 계 시민들의 두터운 후원을 업고 있으며, 중동문제에 있어선「이스라엘」을 부족함이 없이 두둔하고 있다. 소련의 유대인 문제에도 준열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한 때 월남전을 지지하는 보수파를 뒷받침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티우」정권의 억제정책엔 여간 비판적이 아니다. 한국문제에 대한 그의 시각도 이런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정치적으로 이런 부분적인 좌선 회를 하게 된 것은「플러스」요소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미국 야당의 대통령지망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에도 관심을 가져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직은「미스터·X」에 불과하지만 그「X」의 정견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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