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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음악을 대하는 즐거움|국향 정기연주「한국작곡가의 밤」을 듣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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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월간중앙』에 나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우리는 음악적 필연에서가 아니라 소위 신문화로서 이질적인 서양음악을 수입했다. 따라서 이 외래음악을 소화, 모방하는 연주자들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은 한국작곡 계가 그동안 얼마나「잊혀진 지대」에서 자연발생적으로만 성장했는가를 알려준다. 작곡가들은 이런 작곡풍토에서 각자 모두 고독한「패턴」만을 쌓아올릴 수밖에 없었다.
작곡가 우위의 풍토는 국가와 사회가 마련해 줄 의무가 있다. 이 의무와 필연성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 국향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마련한「한국작곡가의 밤」이다. 두 번째 접어든 「이벤트」를 이런 의미에서 우선 높이 평가하고 박수를 보낸다.
7일 밤 열린 이번 공연은 청중의 보수적 경향을 감안한 의도적인「프로그램 밍」인지는 모르겠으나 새로운 시도의 작품은 볼 수 없고 모두 온건하고 안정된 품위를 지닌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낯선 음악을 대하는 감각적 긴장대신 새로운 음악을 대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연주된 작품은 모두 그 나름대로 작풍이 여물어가고 있어 작곡 계의 앞날이 다양하고 밝다는 것을 확인하게 했다.
최병철의『민속5음계』는 대중을 의식해야하는「오페라」의 서곡인 만큼 친근감을 갖게 하기 위해 5음계를「푸치니」식으로 해결한 작품이다. 이점 납득이 가며 피리의「솔로」와 관악기의 대화 역시 위화감 없이 성공했다고 본다.
「푸가」풍의 전개로 시작되는 공석준의『전설』은 견실한 경향을 지닌 노작이기는 하나「스타일」(양식)의 통일이 아쉽고, 구작인 이영자의『교향적 장』은 서구적 형식전통에 충실한 무리 없는 조형이기는 하나 음악적 감흥은 희박했다.
박재열의『경』은 제1악장「la의 명상」이 동양적인 정의 세계를 묘 파해서 깊은 감명과 여운을 남겼다.
음의「팔레트」(색판)도 다채로운 이 작가는 2, 3악장에서 장구를 중용 했는데 장구라는 타악기가 얼마나 강한 개성과 고집쟁이 인가를 일깨워주었을 뿐 성공하지 못했다. 깊은 인생관조로 독보적인 경지를 열어가고 있는 정윤주의『해탈』은 중후하고 당당한 작품.「테너·솔로」의『나무아미타불』을 경계로 속세(지옥)와 열반(천국)을 뚜렷이 대조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박용구<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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