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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아인슈타인 파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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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파일/프레드 제롬 지음, 강경신 옮김/이제이북스, 1만8천원

영화 '스모크'의 원작자인 소설가 폴 오스터의 작품 가운데 '리바이어던'이있다. 미국 전역에 세워져 있는 크고 작은 '자유의 여신상'을 파괴하는 폭파범의 이야기를 그렸다.

범인의 신념은, 미국이 자유의 이념에 부끄럽게 행동한다면 마땅히 이 여신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이 두려워해 왔던 것은 미국이 겉으로 내세운 이념과 안으로 감춘 속옷 사이의 불일치를 간파한 뒤 뭔가 소동을 일으키려는 비판적 지식인들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이 폭탄과도 같은 존재들의 뇌관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증거조작이나 편지 검열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 파일'(원제 The Einstein File)은 뇌관을 제거당하고 온순한 한 마리 양으로서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모이를 주워먹으며 살기를 거부한 한 지식인인 자연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실 이런 '반미' 운동가 아인슈타인은 상당히 낯설다.

카메라를 향해 혓바닥이나 내미는 장난꾼 같은 아인슈타인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초상화가 아니던가?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아인슈타인의 모습이 '조작'임을 폭로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아인슈타인 사망 뒤 미 연방수사국(FBI) 후버 국장 같은 우익 인사들은 진보 성향의 이런 인물이 미국의 유산으로 자리잡는 것을 꺼렸다. 아인슈타인의 시체를 훔쳐다 반미국의 바이러스에 살균처리를 하고 '과학의 성인'으로 꽃단장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일찍이 미국 작가 토머스 핀천은 이런 수법을 정확히 요약한 적이 있다. '한 작품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리고 싶다면 그것을 없애버리지 말고 차라리 포르노 버전으로 각색해라.'

아인슈타인의 뇌관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이 선택한 것은 그를 '탈(脫)정치화 광대 버전'으로 각색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미키마우스나 도널드 덕처럼 아이들 티셔츠에 등장해도 무해한 캐릭터 상품 아인슈타인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호호 웃고 있는 노인의 이미지 안에 갇힌 진짜 아인슈타인, "자신의 과학적 업적으로 얻은 명성을 도덕과 정의를 설파하는 제단에 봉헌"(2백15쪽)하기를 열망한 사회운동가 아인슈타인을 되찾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을 "비정한 자본가들을 맛있게 먹어치우는 사람" 또는 "아내와 싸우게 될 때만 제외하고는 모든 종류의 전쟁에 반대"(46쪽)하는 사람이라고 즐겨 칭하며, 사회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평화와 양심을 지키려는 모든 이들의 벗이 되고자 했다.

이런 인물이 빨갱이 사냥 매카시즘의 표적이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해서 아인슈타인을 공산주의자로 고발하기 위한 FBI의 최고 기밀문서 '아인슈타인 파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책이 아인슈타인의 쓰레기통까지 뒤지며 그를 쫓아다닌 FBI의 행적을 폭로하며 진짜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미국 권력의 본성이 나치와도 닮았다는 점이다. 쌍둥이 악마처럼 게슈타포와 FBI는 인종차별을 조장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아인슈타인처럼 나치를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온 진보적인 인물들을 색출하기 위해 FBI가 가장 큰 신뢰를 가지고 사용한 정보는 바로 게슈타포의 파일과 독일 우익인사들의 고발성 증언이었다.

미국의 진짜 뱃속에 대한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무리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들 그것이 되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기록이라면, 우리는 마치 박물관의 공룡을 보는 듯한 거리감 속에서 책장을 뒤적거릴 수 있으리라.

이와 달리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아인슈타인이 갖는 강렬한 '현재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공산당원인 아버지 덕에 '빨간 기저귀'를 차고 태어나 FBI의 감시 속에 젊은 시절을 보낸 저자는 부시 정권이라는 '좋은 환경'을 만나 다시 창궐하는 매카시즘의 악령을 푸닥거리할 퇴마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선한 유령을 불러내 이 오래된 옛 악령과 대결시켜보는 것이다.

현직 상원의원이 '래리 킹 쇼' 같은 TV프로에 등장해 "여러분은 자신들 모두가 비밀수사요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이슬람 사냥을 조장하는 이 시대는 어쩌면 아인슈타인 시대의 부활이 아닌가?

인권탄압을 애국심으로 포장하는 수법은 아인슈타인이 맞닥뜨렸던 매카시즘 수법이다. 이렇듯 이 책은 아인슈타인과 FBI 사이의 숨바꼭질을 1950년대식 스릴러를 써 내려가듯 풀어가며 실은 우리 시대의 불행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교황청이 저주를 내려도, 세계가 비난을 해도 전쟁을 수행하는 어떤 정권(政權)과 마주친 우리들 모두의 불행을 말이다.

서동욱<시인.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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