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기/틴틴] '자연의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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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일기/빌리 푸흐너 지음, 조화영 옮김, 심지복, 9천5백원

"도대체 자연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 때문에" 오스트리아 작가 빌리 푸흐너는 자연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사진가이자 화가였기에 그림일기가 되었고 글은 짤막해졌다.

"봄을 조금 안다고/생각하는 것은, /번쩍이는/새로운 불빛이라기보다는/정결한 정원 오솔길 위에/던져진 부드러운 흩어진/그림자들의 유희…" 같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봄'이 인용된 꽃 그림은 "눈이 먼 채 초록빛으로 비틀거리고"라는 구절을 시처럼 보여준다.

그가 일기의 소재로 삼은 대상은 아주 많다. "죽은 작은 동물, 뼈의 일부분, 말린 식물, 젖은 이끼, 새떼, 피어있는 꽃…." 그는 식물들과 동물들을 관찰하다가 "결국에는 내 본질 자체를 들여다본다"고 말한다.

그림에 몰두하는 것이 때로 그를 슬프게 만든 까닭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덧없음과 유한성을 보았기 때문인 듯하다.

일기장에 들어앉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세밀화는 어린아이가 처음 자연을 바라볼 때의 그 눈을 닮았다. 느릿느릿, 때로 책장 넘기는 일을 잊을 만큼 오래 그 생물들을 들여다보노라면 "천천히 조금씩 나는 내 그림 속으로 사라졌다"고 쓴 화가의 마음을 알 듯도 하다.

그는 '유리 속에 있는 자연'을 그린 뒤 시를 읊 듯 말했다. "이 작은 동물들을 볼 때면, 이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유리로 만든 푸른 하늘 아래 앉아있다고 느낀다."

작고 여린 것들을 소복하게 모아 애정으로 감싸안은 그림책은 '자연의 일기'이자 '마음의 일기'가 된다. 이 책을 가슴으로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자연의 일기'를 꿈꾸게 된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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