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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의 종횡고금<4> 사랑의 메신저였던 철새가 요즘 'AI논란' 지켜본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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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원시인류에게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었고, 그것은 동물숭배로 표현되었다. 동물숭배는 공포와 선망의 두 가지 감정에서 유래한다. 용의 기원에 관한 중국학계의 일부 가설에 의하면 고대에 중국대륙의 기후가 온난했을 때 양쯔강(楊子江)에는 악어가 살았고 이것에 대한 공포에서 용 숭배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와 달리 동방의 동이계(東夷系) 종족들은 조류를 숭배했다. 샤머니즘을 신앙하는 그들은 새가 천계를 왕래한다고 믿어 그것의 비상(飛翔) 능력을 선망한 나머지 봉황을 숭배하기에 이르렀다. 무서운 파충류와는 달리 선망의 존재이었던 조류는 고대부터 가까운 일상에서 자주 감정이입의 대상이 됐다.

 동아시아 문학의 출현을 알리는 최초의 앤솔로지(anthology·선집)인 『시경(詩經)』 첫 장이 조류와 인간의 아름다운 교감으로 장식되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꾸룩 꾸룩 물수리는 황하의 모래톱에서 노니는데, 아리따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일러라.’(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이 시는 결혼 적령기의 한 청년이 한 쌍의 다정한 새들을 보고 자신의 짝을 갈망하는 심정을 그려냈다. 옛 사람들은 일찍이 조류의 암·수컷이 애정이 깊음에 주목했다. 원앙은 그리하여 부부간 애정의 상징이 됐다.

 우리 한시에도 예외 없이 조류에 애정을 빗댄 작품이 있다. 유명한 ‘황조가’(黃鳥歌)가 그것이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는 암수컷이 다정한데, 외로운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질투심으로 맹렬히 다투는 두 후궁 사이에서 번민하는 유리왕(瑠璃王)의 심정을 그려낸 시이다.

 그런데 왜 꾀꼬리인가. 『산해경』(山海經) ‘북차삼경’(北次三經)을 보면 꾀꼬리는 질투심을 없애주는 새라고 했으니 유리왕의 처지로서는 이 새가 부럽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인근의 텃새보다도 가을이면 때맞추어 먼 곳에서 찾아 들었다 다시 미지의 곳을 향해 떠나는 철새는 경이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는 등허리가 태산과 같고 날개는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은 큰 새 붕(鵬)이 나온다. 붕새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나 올라가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고 했다. 절대의 경지를 우화적으로 표현한 이 붕새에 대한 힌트를 장자는 아마 철새에서 얻었을 것이다.

 먼 길을 떠나는 철새는 먼 곳으로부터의 소식을 뜻하기도 한다. 한무제(漢武帝) 때에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던 소무(蘇武)는 바이칼 호 근처에 억류되어 19년이나 양을 치고 살았다. 후일 한나라에서 송환을 요구하자 흉노의 왕은 그가 죽었다고 거짓말 했는데 황제가 상림원(上林苑)에서 활로 쏘아 잡은 기러기의 발에 묶여진 소무의 편지를 보았다고 말하자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한서』(漢書) ‘이광소건전’(李廣蘇建傳)에 나온다. 이후 먼 곳에서 온 편지를 ‘안신(雁信)’으로 일컫게 됐다.

 1960년대 인기 가요인 안다성의 ‘사랑이 메아리 칠 때’에서 ‘가을밤에는 기러기 편에 소식을 보내리라’고 노래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요즘 조류 인플루엔자가 철새를 통해 전염된다고 하여 철새에 GPS를 부착하여 그들의 이동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상황이 됐다. 어쩌다 철새가 사람을 구했던 메신저가 아니라 재앙의 전령이 됐는지 하 수상한 시절을 탓할 따름이다.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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