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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실시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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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정희 대통령은 22일 야당과 재야의 개헌 및 퇴진 요구로 인한 국론 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현행 헌법과 유신체제 수호 여부를 국민투표에 회부하겠다고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이 국민투표 결과에 자신의 신임을 걸어 만일 국민투표가 부결될 경우 하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국민투표는 62, 69, 72년의 개헌 국민투표에 이어 우리 역사상 네번째의 국민투표다.
62년과 72년의 국민 투표가 5·16혁명과 10월 유신 이후에 기초한 개헌안에 민정 헌법의 성격을 부여하기 위한 초헌법적 국민투표였으나 이번 국민투표는 69년의 3선 개헌 국민 투표와 함께 기존 헌법 절차에 따른 것이다.
국민투표의 결과에 박 대통령이 신임을 걸었다는 점에서도 3선 개헌에 신임을 걸었던 69년 국민투표와는 상당히 흡사한 면이 있다.
유신 헌법은 종래의 개정 국민 투표 외에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국가의 중요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를 신설했다.
야당과 재야의 개헌 요구에 대한 시국 수습의 의미를 가진 이번 경우는 형식상 중요 정책에 관한 국민투표나 정치적으로는 두 가지 의미가 혼효한다고 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국민투표 제도의 생성 과정을 살펴보면 근세에 있어서는 미국의 각 주가 처음으로 이 제도를 채택, 「프랑스」와 「스위스」가 뒤따랐고 1차 대전 후 많은 국가에 파급됐다.
국민투표 제도가 널리 파급되게 된 까닭은 통치자가 국민에게 직접 통치의 정당성을 찾아야 할 필요가 증대했기 때문이다. 국회를 해산한 경우라든가, 국회가 있더라도 그 안에서 표결로 시국관의 차이를 결론짓기 힘들 때 국민에게 직접 묻는 방식은 이론상 강점을 갖게 마련이다.
국민의 의사가 자유롭게 표현될 수만 있다면 국민투표는 현실적 제도로서의 허다한 문젯점에도 불구하고 난국을 해결하는 가장 큰 명분일 수 있다.
이것이 정부가 재야의 개헌 및 박 대통령 퇴진 요구로 첨예해진 국론 분열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헌법 수호 국민투표를 택한 이유이다.
야당·학생·재야의 체제 도전으로 3 ,4월에 예기되는 정국 혼란을 해소, 예방하는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작년 이맘때 긴급조치로 강력책을 쓴 것이 국내외적으로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국민투표란 결단이 내려진 것 같다.
이 결단은 12월초부터 구상됐다는 얘기며 국회해산·총선거도 거론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투표에서 신임을 얻으면 현 체제와 정부의 입장은 강화되게 마련. 반대론도 이론상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 그후에도 체제 도전이 계속될 경우 새로운 강경 조치를 도입하는데 저항이 적어지리란 판단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민투표 후 정부·여당의 요직 개편이 뒷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우와 같이 국가 중요 정책에 관한 국민투표의 정족수는 헌법에 명문 규정이 없다. 법 규정의 미비로 볼 수 있다.
법무부의 해석으로는 민주주의의 다수결원칙에 의해 투표 참가 수에는 관계없이 유효 투표의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된다는 견해다.
현행 국민투표법에 의하면 선관위의 국민투표에 관한 계몽을 제외한 찬·반 운동과 정당 및 정당원의 투·개표 참관이 대폭 금지되어 있다.
야당은 이러한 제약 규정을 들어 국민투표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회의를 표시하고 있다.
고흥문 신민당 총재 권한 대행은 『찬·반 운동이나 정당 참관이 불가능한 현행법 하의 국민투표는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으므로 무의미하다』는 의견.
통일당과 사회당도 현행법 하에서의 국민투표를 절대 반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69년에도 그랬지만 야당 일각에서는 국민투표 「보이코트」론이 일고 있다. 그러나 높은 기권율은 정부에 대한 불신감의 표현이라는 정치적인 의미가 있을 뿐 법적으로는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의 불참은 찬성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현행법에 따르면 선관위가 직접 또는 학식과 덕망이 있는 사람을 위촉하거나 행정기관에 의뢰해 국민투표안의 제안 이유·주요 골자·내용·투표 절차·방법에 관해 행하는 지도 계몽만이 가능하다.
국민투표에 회부된 사항에 대한 찬·반 운동이 전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나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한 운동은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금지된 운동은 ▲연설 ▲방송·간행물·기타 간행물을 통한 찬·반 의견 표시 ▲서명·날인 운동 ▲금품·음식물 또는 이익을 제공하거나 약속하는 행위 ▲호별 방문 ▲시위 ▲인신공격 행위 등 광범하다.
결국 지도와 계몽이란 이름의 찬반 유도의 길은 넓으나 광범한 찬·반 운동 금지로 반대 활동은 거의 불가능한 셈이다.
국민투표의 투·개표 참관도 각급 선관위에서 학식과 덕망 있는 주민 중에서 위촉하게 되어 있어 69년 3선 개헌 때 같은 정당 참관의 길이 막혀 있다. 정당 대표의 참관뿐 아니라 정당원의 참관인 피촉 자격 마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발달되고 투표 관리가 공정해 감에 따라 국민투표 만년 승리의 신화는 깨져 가고 있다.
미국 「매서추세츠」주의 헌법도 1778년 국민투표에서 부결돼 수정을 거듭한 끝에 1780년 국민투표에서 통과됐다. 대혁명 이후 약20차례의 국민투표를 실시한 「프랑스」도 지난 46년 제4공화국 헌법 제정 때와 69년 4월 상원 개혁 국민 투표에서 정부가 패배, 「드골」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왔다. 국민투표는 주권자인 국민이 심판을 내리는 최후의 정치적 결단이다.
일본 미농부 교수의 『이제 도가 건전한 결과를 나타내기 위해선 국민이 정치적으로 훈련되어 있고 일반 대중의 지식이 진보하여 책임감과 공공심이 상당히 발달될 것을 요건으로 한다』는 주장은 깊은 시사를 던져 준다.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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