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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국민의 봉사자」 신념 찾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공복심>
민주시민으로서의 공복(공무원)은 글자 그대로「국민을 위한 봉사자」로서의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도 잠언처럼 부른 짖는 당연한 진리가 해방이래 단 한해도 실감있게 실현되어본 날이 없었다. 오히려 공복은 국민에 대한 봉사는커녕 관권의 강화로 거드름만 더 피우고 국민을 편리할대로 다스리기 위해 쥐어짜기까지 하는 악폐를 낳기도 한다.
비뚤어진 봉사심은 의당 해주어야할 민원 사무를 질질 끌고는 이른바·급행료를 받고 마치선심이나 쓰는 양 도장을 찍어주는 「창구부정」에서 흔히 대변된다.
얼마 전 A씨(32)가 해외여행 수속 때 겪은 실례 하나. ××증명서 한통을 떼러 B청에 올때 처음 담당자는 A씨가 써낸 신청용지를 요리조리 보더니 기재사실 가운대 한자를 한글로 써 오라고 돌려주었다 다시 다른 용지에 써냈더니 이번엔 만년필 글씨는 안되고 검은「볼펜」으로만 써야 된다고 핀잔이었다. 그때 곁에 있던 한 시민이 B청 앞 행정대서소에 맡기란 귀띔. A씨는 대서방에서 1천원을 주고 사정했더니 20여분만에「급행료」의 효험을 즉석에서 실감했다.
행정대서소와 짜고 하는 민원서류 부정이 성행한지 오래지만 좀채 사라지지 않는다. 공무원 부정을 전담하는 현직 검사 Q씨의 경우 지난 첫 추위에 수도가 터져 수도사업소에 고장보고를 했으나 1주일이 넘어도 감감소식.
Q씨 집에 수도국 직원이 나타난 것은 첫 신고 있은지 26일째-.
공무원 부정을 다루는 검사라는 걸 뒤늦게 안 직원은『왜 신고 때 검사 댁이라 말씀하지 않았습니까』고 말하면서 그 자리에서 수리 차를 불렀고「3천5백몇십원의 고지서를 보더니『1천8백원만 내십시오』하며 다른 고지서를 떼어주는 친절(?)까지 베물어 주더라는 것.
민주 시민으로서의 공복의 자세는 오만과 특권의식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 공무원의 지위란 바로 국민이 세금으로 일정한 생활급(생활급)을 주고 국가행정 업무를 위임하는 것. 따라서 그 지위는 재산처럼 소유할 수없는 것인데도 일부 공무원은 마치 그 자리를 천부로 물려받은 것처럼 지위를 남용, 공복으로서의 자세를 흐려놓는 일이 흔하다. 공무원이 자기 호주머니 돈 쓰는 것처럼 예산을 빼어먹고 남용하는 것도 바로 그같은 예.
서울시내 S동·P동은 부근 수천평의 풍치지구가 헐값으로 불하되거나 함부로 개간이 허가되어 몇해 사이 녹지가 택지로 둔갑해 버렸다. 마찬가지 예로 외화를 획득한다는 눈앞의 목적만을 위해 시민의 공원인 남산의 중턱 허리가 깎인채 그 자리에「매머드·아파트」가 지어졌다.
이는 공복이 그가 집무한 기간의 지위에서 행한 자세치고는 얼마나 뒷날에까지 이지러진「이미지」를 주는 실책인지 알 수 있다.
간혹 천박하고 독선적인 공복의 자세는 민주 시민으로서 더 큰 위험을 끼치기도 한다. 생활여건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목전의 전시효과만을 위해 수십억원의 세금을 낭비, 산등성이에 시민「아파트」를 지었다가 헐어버리는 실책은 두고두고 공복으로서 되새겨봐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체신부 간부 직원들이 외기 쉽고「프리미엄」이 붙어있는 연(연)번호 전화를 두루 나눠 달았다 해서 말썽됐을 때의 일. 신문사에 한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 체신부 직원이 번호 좋은 전화하나 달았기로서니 그렇게 배가 아프냐』-.여인은 앙칼진 목소리로 한차례 쏘아붙인 뒤 전화를 딱 끊었다. 체신부 직원이면 당연히 좋은 번호의 전화를 가져도 무관하다는 특권의식에 못지 않게 그들의 가족들조차 공복심의 자세에 거리감이 있다면 그냥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현상이다.
연전에 작고한 K대 법관은 살아 평생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존댓말을 썼다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말 한마디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는 주변의 비양거림도 있었지만 그는 항시『그들이 낸 세금으로 내가 월급을 받는데 어떻게 반말을 쓸 것인가』 고 대답했다.
전직 대법원 판사 B씨로 재직시 그의 전용차를 부인이 한번 탔다가 큰 소동이 났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출퇴근 이외에는 엄격히 25원짜리 일반「버스」를 이용했다. 보다 못한 주위에서 개인 돈으로 기름을 사 넣으면 되지 않느냐고도 했으나『기름은 그렇게 한다해도 자동차는 국가의 것이 아니냐』고 굳이 마다했다.
공복으로서 청렴과 품위의 자세를 지긴 본보기이기도 했다. 과장·국장만 되어도 공휴일에「골프」채를 들고 관계업자들과 어울리며「골프」를 치거나 업자들과 아무런 거리낌없이 화투놀이를 하는 공복이 많은데 비해 본받을 만한 자세로 소문났었다.
공무원의 부정이 박봉에서 비롯한 것으로 흔히 변소(변소) 되고 있으나, 작년 어느 국가기관의 비위 공무원 13의 가정조사를 해본 결과 생계곤란 때문에 저질러진 것은 단 1건뿐 대부분이 습관성 유혹과 탐욕에서 빚어진 것임이 밝혀졌다.
「정직하면 바보」라는 공무원 사회의 한심한 풍조, 부정에 둔감해진 일반의 인식을 두고 전직고관을 지낸 L교수는『외부의 어떤 물리적인 작용보다는 공복 스스로가 올바른 의도를 따라 재임 동안이라도 안빈낙도하겠다는 사명의식을 되찾아야한다』고 말했다. <정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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