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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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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과학>
세계 각국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이 각 부문에 걸쳐 있지만「노벨」상만큼 전 세계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없다. 1901년에 창설된 후 70여년 거듭하면서 수많은 작가와 과학계의 거성들을 클러즈업 시켜 권위를 높여왔고 그러한 권위는 모든 사람에 의해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문화권의 척도가 된다고도 할 수 있는「노벨」상에 우리 나라는 얼마나 접근해 있는가. 과학·문학부문에서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10월 중순께 되면 세계 도처의 저명한 과학자들은「스웨덴」의 수도「스톡홀름」서 그의 탁월한 업적을 칭송하는「전보」가 오지 않을까 기다리게 된다. 이때쯤 되면 과학자 최고의 영예인「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때문이다.
「노벨」상이 하나의 두뇌「올림픽」으로 대국주의의 인상을 씻지 못하고 있다느니 또는 애당초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과학과 기술에 대한 편견의 폭을 더욱 넓히고 있을 뿐이라는 반론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노벨」과학상은 역시 그 나라의 과학기술의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전통있고 권위있는 척도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과학기술 과연 「노벨」상 수상은 가능한가. 불가능하다면 무엇 때문일까.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전쟁이 사라지도록 하기 위해「다이너마이트」를 발명, 엄청난 돈을 모은「알프레드·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1901년부터 『국적에 관계없이 지난 한햇동안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노벨」상이 주어졌다.
「노벨」과학상은 ①물리학에서「뛰어난 발명·발견」②화학에서「중요한 발견·개발」③의학에서「뚜렷한 발견」등 3분야에서 진화적인 방법과 개념을 제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도약을 가능케 한 과학자에게 주기로 되어 있다.

<노벨상은 두뇌 올림픽>
X「레이」를 발견, 1901년「노벨」상 수상1호의 영광을 누린「뢴트겐」(독)이래로 75년 동안 물리분야에서 1백1명, 화학 분야에서 86명, 생리·의학분야에서 1백8명 등 총 2백75명의 과학자가 수상의 기쁨을 맛보았다.
나라별로 보면 미국이 92명(물리32명, 화학 19명, 생리·의학41명)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영국이 50명(물리 17명, 화학 19명, 생리·의학 15명)으로 2위, 서독이 50명(물리16, 화학 24명, 생리·의학10명)으로 세번째다. 4위는「프랑스」로 20명이고 소련은 9명의 과학자가 수상 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3명. 중국이 2명, 인도가 1명의 물리상수상자를 배출, 이들 세나라가「아시아」의 면목을 우지하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본다면 1백35개 국가 중에서 26개국만이 수상국가이고 1백개 이상의 나라들이 우리 나라처럼「노벨」과학상을 고대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영예의「노벨」과학상을 획득할 수 있는가? 누가 언제쯤 수상할 수 있는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리의 여건으로 보아서「노벨」과학상 수상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것조차 어렵다는게 국내과학자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다.
장세훈 교수(서울대 문리대·유기화학) 는 우리의 과학이 학문으로서 출발한지 겨우 30년 남짓이어서 국제적으로 업적을 평가받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학문적인 수준으로 보아서 일본에 20∼30년 뒤져있고 미국이나 서구에는 더욱 뒤떨어져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10년 후쯤이면 우리도 자랑스러운 과학자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견해도 있다.
전무식 박사(한국과학원교수·물리화학)는 보험기재라든지 연구비가 충분치 못해 지금은 어렵지만 이론면에서는 결코 세계수준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연구분야를 잘 택하기만 하면 1990년 전후로 해서「노벨」상 수상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백35국 중 26국만 수상>
특히 물리학 분야에서는 몇몇 과학자들이 미국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기 때문에 국내 과학계에서는 상당히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휘소 박사(「페르티」국립 가속기「센터 ·소립자 물리학), 김정욱 박사( 「존즈·홉킨즈」대·소립자물리학), 김호길 박사(「메릴랜드」대·「플라즈마」전공), 김영배 박사 (남부「캘리포니아」 대·저온 물리학), 이백현 박사(미 항공우주국·「플라즈마」) , 이용영 박사 (「브루크헤이븐」국립연구소·소립자 물리학)등이 유망주로 꼽힌다.
화학계에서는 이태규 박사(한국 과학원교수·이론화학)와 박달조 박사(전 한국 과학원원장·불소화학)가 연구업적이 많고 비교적 국제학계의 인정과 평가를 받고있다고 화학자들은입을 모은다.
화학은 3과학 중 연구 인구가 가장 많은 분야인데 물리학분야 만큼 국제 무대에서의 활약이 활발하지 못하지만 최근 해외에서 차차 두각을 나타내는 후진들이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는 전망이 밝다는게 한상준 박사(한국과학 기술 연구소 소장·유기화학)의 예진이다.
한편 의학분야는 물리·화학보다 훨씬「노벨」상 수상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혁박사(서울대 의대학장·예방 의학) 는 의학이란 학문이 너무 다양한데다가 오랜 역사와 전통을 토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 나라처럼 후진국의 경우 이를 소화시키는데 급급한 실정이라고 토로하고 특히 미국으로 가더라도 거의가 기초의학보다는 임상의학을 택하는 경향이어서「노벨」의학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의학상은 더욱 힘들어>
한때는 이광수 박사(「뉴요크」대 교수·약리학)가 유망주로서 물망에 오르내리곤 했다. 이 박사는 현재「노벨」의학상 후보 추천위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러는 김윤범 박사(미「슬로건·캐터링」연구소·면역학) 나 임종식 박사(미 국립보건원·종양「바이러스」) 또는 윤정구 박사(불「구스타모·루시」암 연구소·종양 면역학) 에게 기대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앞으로 10여년 이내에 27번째로나마「노벨」의학상 수상국이 되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성싶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지적된다.
우선 우리 과학계는 세계도처 연구실에서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과학기술 정보에 대해서 너무 오랫동안 깜깜하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발표되는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접하는데 6개월, 심지어는 1년 이상 걸리는 우리 나라 실정인데 어떻게 다른 나라와의 치열한 경쟁에 이길 수 있겠느냐고 권영대 박사(원자력 연구소 상임위원·광학)는 반문한다.

<그림1>에서 보듯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실리는 과학 전문지의 증가는 기하급수적이다. 1750년에는 겨우 10여종에 지나지 않던 것이 19세기초에는 1백여종. 1830년께는 3백여종으로 늘어났고 1900년에는 1만여종, 그리고 1964년에는 무려 3만5천여종으로 급증했다.
이젠 세계도처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과학기술 정보를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주체하질 못해서「컴퓨터」에 맡기는게 세계 과학계의 추세다.
다원자 분자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인 분자궤도 논으로 66년도에「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미「시카고」대의「로버트·S·멀리컨」교수는 그의 영광을「컴퓨터」에 돌린다고말해 화제가 되었었다. 그만큼「컴퓨터」는 과학자에게 필수기재가 된셈이다.
그러나 <그림> 2에서 보듯 우리 나라「컴퓨터」보유대수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이광호 박사(서울대 학생부 처장·태생학) 는 지금 세계 과학자들의 경쟁은 두뇌싸움이라기보다는 실험기재 및 장비의 싸움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이 문제는 결국 빈약한 연구비라는 우리 과학계의 서글픈 경제여건에 연결괸다. <그림3 4 5>는 우리의 실정이 얼마나 궁핍한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물리분야의 경우 지급받는 연구비는 과학기술처에서 5백만원, 문교부에서 2, 3백만원으로 기껏 7, 8백만원에 지나지 않는데 이러한 경제적인 여건에서 어떻게「노벨」상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조순탁 박사 (한국 과학원원장·통계 물리학)의 말이다.
고윤석박사(서울대 문리대 교수·핵물리학)는 개별적이고 산발적인 연구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과학계의 풍토로 보아서 억지로라도「노벨」상에 도전하려면 대학교수의 연구 활동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현재 1인당 연구보조비가 고작 30여만원이니 말이 되냐고 푸념한다(표I 참조>.
그런데다가「노벨」상에 대한 도전의 발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과학을 가볍게 여기는 우리 나라 과학계풍토 또한 중요한 장애요소다. 기초과학이 발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선행되지 않고는 치열한 국제경쟁에 이길 수 없다고 윤상업 박사(서강대 부총장·물리화학)는 단언한다.

<과학전문지 3만여종>
어떻든「노벨」과학상에 관한한 그 수상가능성에 대해서는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학문적인 특징을 잘 파악하기만 한다면 의외로 빨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도 강력하다.
과학적 발견은 「아이디어」의 새로운 결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도 날로 팽창해 가는 지식을 모두 흡수, 소화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같은 분야의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하는「팀웍」과 과학자들의 기동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조병하 박사(한국 과학원 교수·소립자 물리학)는 최근에 이르러「노벨」과학상이 여러 과학자에 공동으로 주어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현대과학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리처럼 불리한 풍토에 있는 과학자일수록 연구조합형식으로 협동연구를 진행하고 국제적인 교류도 조직적으로 촉진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려면 몇몇「리더」를 중심으로 과학자의 계보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오로지 연구생활에 일생을 바치는데 삶의 보람을 찾는 가치체계의 확립에 과학자들이 솔선수범하는 풍토가 역선되기도 한다. 물론 사회의 적극적인 뒷받침을 전제로 하기는 하지만 과학자는『그의 방법대로 그 자신에 의하여 자신에게 도전하는 존재』라는「페르미」 (핵분열의 발견으로 38년도 노벨상 수상)의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 과학의 특성을 파악하고 사명감속에서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는 철저한 연구성과가 늘어난다면 아무리 여건이 불리하다고 할지라도「노벨」과학상의 수상은 그리 멀지않다는 결론이다.<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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