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총재의「페이스」와 당의 체질이 빚은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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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영삼 총재의 당 지도방식에 대한 신민당내의 불만은 비주류의 당직자 인책주장과 고흥문 정무회의부의장의 사표제출로 표면화됐다.
그동안 이철승 이민우 김원만 신도환씨 등으로 대표되는 당내비주류는 김 총재의 지도방식에 꾸준히 불만을 표시해왔고 특히 24일 정무회의에서는 당직자의 인책론을 제기했다.
그들의 불만의 표적은 제1차로 김총재, 제2차로 김형일 총무였으나 막상 사표를 제출한 사람은 고 부의장이었다.
물론 고 부의장이 지난번 여야 막후협상 이후 비주류의 공격을 받긴 했으나 그가 사표를 가로맡은 데는 대 비주류뿐 아니라 범 주류내부의 미묘한 관계도 복합작용을 했다고 보아야한다.
당의 제2인자로 김영삼체제의 지주를 이뤘던 고 부의장은 그동안 당책결정 과정에 소외된데 대한 불만이 상당히 있었던 것. 신민당 의원의 데모직전에 그가 제시한 특위협상안이 무시된 점, 귀성·원내투쟁방식에 대한 그의 건의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 그가 타결한 여야협상을 정일형 의원을 발언자로 내세워 무위로 돌린 점, 서울의 개헌대연설회 개최문제에 대해 사전의견교환이 없었던 점에 대해 소외감을 느껴왔다.
이런 판에 비주류의 그에 대한 공격은 그로서는「허명 뿐이라고 생각해온」부 의장직에서 벗어날 절호의 명분이 된 셈이다.
김 총재에게 고 부의장의 사표는 적지 않은 타격이다. 김 총재의 지도력 약화를 꾀해온 비주류로서는 고씨의 사표로 일단 득을 보긴 했으나 한동안 대 주류공격의 화살을 늦추어야할 입장에 처하게됐다.
비주류는 정기국회 폐회 후부터 그동안의 원내전략을 비난하고 총무에 대한 인책공세를 펴기 위해 의원총회소집 서명작업을 해왔다. 이 공세는 고 부의장의 사표로 완화되리라 봐야한다.
김 총재가 8월23일 전당대회에서 당수에 선출되고 개헌추진의 깃발아래 원내회생전략을 쓰면서부터 비주류는 공공연히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비주류의 공격은 표면상 개헌투쟁 방법론에 대한 시비로 나타났다.
그러나 김 총재 주변에서는 개헌방법론에 대한 견해차이뿐 아니라 시국관의 차이까지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자연히 김 총재는 잘 따라오지 않는 사람들을 끌고 가기 위해 설득과 협의방식보다는 명분·강행방식을 구사했다. 이러한 지도방식은 비주류의 불만의 깊이와 폭을 더해갔다.
표면화한 신민당의 내부균열은 쉽게 치유되기 힘들 것 같다. 김 총재가 당 운영방식에 대한 어떤 보장을 않는 한 고 부의장의 사표도 만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김 총재로서는 당의 공중분해를 무릅쓰고라도 그의 강경노선의 「페이스」를 고집하든지, 당의 체질적용을 위해 「페이스」를 늦추고 지도방식을 바꾸든지 해야할 기로에 섰다. 김 총재가 앞으로 어떤 길을 택할지 주목된다.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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