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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힘과 부드러움 … 가장 차가운 곳에서 가장 뜨거운 그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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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진 중앙포토, 에스콰이어 ]

소설가 김별아가 본 이상화·김연아

“나의 애인이여,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히브리 성서 『아가(雅歌)』에는 사랑하는 신부에게 바치는 찬미의 시가 새겨져 있다. 그녀는 산꼭대기, 사자가 사는 굴, 표범이 사는 산으로부터 내려왔다. 바람에 휘날리는 그녀의 머리채는 비탈을 내리닫는 염소 떼와 같다. 그녀의 눈동자는 비둘기를 닮았고, 그녀의 볼은 석류 조각처럼 붉다. 그녀의 성스러운 아름다움은 창백하고 수척하지 않다. 생기발랄한 춤을 추며 풍요와 희망을 약속한다.

표범이 내달리듯 거침없는 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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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오늘 나는 다시금 그녀를 만난다. 고대인들에게 숭배받던 여신, 혹독한 자연의 끝없는 시련 속에서도 거듭거듭 생명을 부활시키던 여신들의 모습을 얼음판 위를 지치는 그녀들에게서 발견한다. 밴쿠버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로서 소치 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김연아 선수는 ‘피겨의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 스타다. 밴쿠버에 이어 소치에서 금메달을 따낸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상화 선수는 ‘빙상의 여제’라는 이름이 무색지 않은 챔피언이다. 그녀들로 말미암아 2014년의 한국은 차갑지만 뜨거운 ‘겨울왕국’이다.

 현재 한국인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사랑하는 여성인 김연아 선수와 이상화 선수를 견주는 일은 어쩌면 부질없는 공론공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종목도 다르고 삶의 이력도 다르다. 하지만 이미 ‘여성’의 틀로 가둘 수 없는 뛰어난 선수인 그들이 ‘여성’이기에 전달하는 감동은 서로 다른 빛깔로 하나같다. 이러쿵저러쿵한 군소리를 걷어치우고 말하자면, 그들은 아름답다. 여성으로서, 선수로서, 여자 선수로서 아름답다.

 500m의 빙상 트랙을 달리는 이상화 선수는 역동하는 ‘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용맹한 사자가 사는 굴에서, 날쌘 표범이 사는 산에서 내리 달리는 듯 거침없었다. 공기저항을 줄이는 팽팽한 경기복은 탄탄한 근육을 위의당당하게 드러내고, 무표정한 민낯에서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빛나는 눈동자만이 반짝였다. 하지만 이상화 선수를 아름답게 하는 ‘힘’은 남성 못잖은 허벅지와 엉덩이의 근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모습을 무성적이거나 중성적인 힘의 과시로 해석하는 시대였다면 그녀는 ‘여성’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찬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녀 스스로 인정하고 과시하는 새로운 ‘여성성’이다. 올림픽이 시작되기 직전 한 남성 매거진에서 공개한 이상화 선수의 ‘패션 화보’는 축소하고 은폐하는 여성성이 아닌 당당하고 유쾌한 여성성을 보여주었다. 지방흡입을 해서라도 줄이고 빼 치워야 마땅한 것으로 치부되던 튼튼한 허벅지가 그처럼 찬탄을 받는 일이야말로 거룩한 복고요, 신성의 회복이 아닐 수 없다.

우아함과 절제미 함께 갖춘 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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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화 선수의 아름다움이 ‘힘’을 통해 드러난다면,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움은 ‘부드러움’에서 비롯된다. 길고 가는 팔다리와 풍부한 표정은 삽시간에 딱딱한 얼음을 찬란한 은반으로 바꿔놓는다. 가냘픈 몸피는 소녀 같고 요정 같다. 한편 정밀한 기술과 세련된 연기를 펼칠 때면 노회한 장인의 진중함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하지만 이처럼 우아미와 절제미를 아울러 갖춘 그녀의 매력은 오른발의 신체나이를 무려 40대로 만들어버린 집요한 훈련 끝에 얻어낸 것이다. 김연아 선수는 일부 팬으로부터 ‘대인배 김선생’이라는 생뚱맞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대범하고 침착하다. 수많은 눈에 둘러싸인 경기장에서 오로지 스스로에게 몰입해 연기를 펼치는 담력은 이러한 부드러움의 힘, 진정으로 강한 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리라.

 실로 김연아 선수와 이상화 선수가 아름다운 것은 꼭 세계 최정상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종목, 모든 선수가 그러하지만 진실로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결정적인 한순간, 고작 몇 분 몇 초를 위해 견뎌낸 수많은 나날이다. 빙판 위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회전과 점프를 연습하던 김연아가 스스로 키워낸 아름다움이다. 다리 근육을 키우기 위해 10㎏이 넘는 타이어를 자전거에 매달고 달렸던 이상화가 고통 속에 빚어낸 아름다움이다. 그러하기에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그녀들의 ‘몸’은 대상화된 눈요깃감이 아니라 오래도록 지난한 훈련을 통해 단련된 삶의 결정, 그 자체인 것이다.

그 몸은 훈련으로 빚어낸 삶의 결정체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운동선수들을 존경한다. 그것은 오갈 데 없는 책상물림으로서 간명한 삶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그들이 얻어내는 빛나는 성취야말로 길고 깊은 굴길에서 눈물과 땀으로 길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들보다 곱절을 더 살고도 여전히 삶의 얼음판에서 미끄러지고 자빠지기 일쑤인 숙맥으로서, 다시금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통해 배운다. 그들은 기어이 승리해서 아름답다. 그들은 기꺼이 패배하기에 아름답다. 오직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도전과 응전 속에서, 패배마저도 끝내 승리일 수밖에 없으리니.

◆김별아=1969년 강원도 강릉 출생. 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로 등단. 장편으로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미실』과 『논개』 『채홍』 『불의 꽃』 등이 있다. 산문집 『삶은 홀수다』 등도 출간했다.

광고 기획자가 본 상화·연아의 매력

◆ 피겨의 연기를 광고에 담다

 김연아는 이미 ‘CF 퀸’이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총 150여 편에 출연했다. 광고업계에서 김연아는 믿음직한 보증수표다. 조광익 광고기획자(AE)는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경우 광고모델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이온음료나 스포츠의류에 한정됐던 기존 스포츠 스타의 광고 범위를 크게 넓혔다. 커피부터 섬유유연제까지 김연아는 다양한 업종의 모델로 등장했다. 김연아가 CF 퀸으로 우뚝 서는 데는 피겨스케이팅에서 갈고닦은 연기력도 작용했다. 조광익 AE는 “그 어떤 배우 못지않게 완숙한 연기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표정과 연출이 가능한 스포츠 스타”라며 광고모델로서 김연아의 장점을 설명했다.

◆ 화장품 광고도 어울리는 ‘반전상화’

 스피드 스케이팅은 기록경기다. 0.01초의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기술과 힘이 중요하다. 조광익 AE는 이러한 종목의 특성이 이상화의 이미지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그는 “빙판을 힘차게 달리는 모습에서 도전적이고 강인한 이미지가 형성됐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올림픽 2연패를 일궈낸 이상화 스토리는 건설이나 글로벌 업종에서 소구력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여자 이상화’는 광고모델 이상화의 또 다른 얼굴이다. 대중은 빙판 밖에서 네일아트를 즐기는 ‘반전상화’의 매력에 끌린다. 조광익 AE는 “이상화의 여성적 매력은 광고에 신선함과 임팩트를 더해준다”며 “화장품 같은 뷰티 업종의 광고모델로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카메라 앞에서 당차고 솔직한 것도 장점이다.

김효경·장혁진 기자 [사진 중앙포토, 에스콰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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