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상)김시면씨「유 러시아」철도 횡단기 본지독점|「모스크바」의 48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포공항에 세워진『고국에 드리는 탑』의 기증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재미실업인 김시면씨(37)가 해방 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유 러시아」대륙을 횡단,「시베리아」·몽고철도 여행을 했다. 김씨는 지난 16일「로스앤젤레스」를 출발, 공로로「모스크바」에 도착한 후 철도편으로 갈아타고「옴스크」「노보시비르스크」「이르쿠츠크」등「시베리아」의 중요도시와 몽고수도「율란바토르」를 관광하고 북경을 거처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김씨의「시베리아」·몽고철도 여행기를 3회에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주>
첫 기착지「모스크바」에서의 이틀간은「시베리아」여행을 위한 준비로 바쁘게 보냈다. 소련과 중공에 대한 입국「비자」는「뉴요크」의「유엔」대표부에서 받을 수 있었지만 몽고입국「비자」는「모스크바」의 몽고대사관이 아니면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다가 중공 행「비자」만 하더라도「모스크바」에서 다시 확인을 해야하고「시베리아」철도여행을 하려면 같은 소련영토 안이지만 각 지방공화국 자치국에서 발행하는 여행허가 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여간 번거로운 절차를 밟지 않으면 안되었다.

<호텔 식당 메뉴는 다양>
10월20일 상오9시. 내가 묵은「알렉산드르·호텔」의 복도는 컴컴하고 방은 음산해 보였지만 그래도 중공의「호텔」보다는 화려한 편이었으며「호텔」이용객도 훨씬 더 많았다. 침대·욕조·창문 등의 규모가 모두 미국의 그것보다 컸으며 이따금 여자투숙객들의 화장한 모습들이 눈길을 끌었다.
간단히 오늘 할 일들을 점검하고 식당으로 갔다.「메뉴」는 다양한 편이나 내가 알 수 있는 음식의 이름을 쉽게 찾아낼 수가 없어 돼지고기 종류의 요리를 시켰다. 음식의 양은 많은 편이고 간도 짰지만 크게 식성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곧 미국대사관을 찾아갔다. 미국서 미리 연락을 취해두었기 때문에「톰슨」영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몽고영사관과 중공대사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나의「비자」발급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평양 방문제의 잘라 거절>
이미 지난4월 중공엔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에 중공대사관측은 쉽게「톰슨」대사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확답했지만 몽고대사관에서는『내일 본인을 보내라』고 간단하게 대답.
공산권과의 상거래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톰슨」영사는 어차피「시베리아」여행을 하려면 북괴대사관에 연락을 취하고 북괴무역대표부의 협조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다면서 북괴영사 윤춘하를 소개해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미국시민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록 한국출신이기는 하지만 북괴 측이 서투른 장난질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 한동안 망설이다가「톰슨」영사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톰슨」영사가 넘겨준 수화기를 들고 나는 북괴대사관에 조심스럽게 전화를 했다. 내가『윤준하씨 계 세요』라고 말을 하자 그쪽에서는 퍽 당황한 음성으로『동지는 누 구시오』하며 대꾸했다. 나는 차근차근 내 신분을 밝히고『오해 없는 여행과 상거래에 협조를 얻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쪽에서는 윤준하가 부재중이라고 말한 뒤 다짜고짜『선생, 평양도 방문하시지 않겠소』라고 제의하는 것이었다.
이어 상투적인 선전 문구들을 늘어놓으며 평양행을 집요하게 종용해오는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듣기만 하다가 너무나 그쪽의 설득이 속이 들여다보이는 것이어서『전혀 생각 없소』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미국대사관을 나와 기차표도 사고「모스크바」의 시장경기도 알아볼 겸 백화점으로 갔다. 진열되어있는 상품은 많은 편이었으나 상품의 종류는 서구사회의 시장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었다.
특히 화장지의 질이 조악하고 비교적 수량이 많은 것이 털 제품 등 일용품인 것으로 봐서 소련이 중공업위주의 국가라는 것을 쉽사리 실감할 수 있었다.

<소비재 귀하고 값비싸>
직업의식에서인지 나는 먼저 가발제품의 값을 알아봤다. 미국에서30「달러」짜 리가 15「달러」에 팔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게다가 물건이 산적해있는 것으로 보아 가발의 사용이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제3국을 통해 들여오는 한국산도 더러 섞여있다고 상점주인이 말했다.
시장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많았으며, 특히 노인이 많은 것이 눈길을 끌었고, 소비재상품은 가발을 재외하고는 모두가 엄청나게 비싸고 공급이 수요를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미국보다 10「달러」나 더 비싼 털모자를 30「달러」에 사고 언젠가 소련의 소비재물가가 귀하고 비싼 것을 지적한 미국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친구는 소련의「로키트」가 달의 이면을 촬영하던 바로 그날 표준형 회중 전등의 전지를 사기 위해「모스크바」의 상점들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하고『그것은 소련에서 만들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감기 걸려 털모자 쓴다고>
이날 마침「모스크바」에 첫눈이 내렸기 때문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털모자를 쓰고 다녔다. 나는 길가는 여학생에게『왜 소련사람들은 그렇게도 털모자를 좋아하는가』고 물었다. 여학생은 서슴지 않고『머리에서부터 든 감기는 좀처럼 낫지 않는데요』라고 대답했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완벽하다는 지하철을 타고「모스크바」역으로 갔다.「모스크바」에서「이르쿠츠크」를 거쳐「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기차는 매일 1회씩 운행하며「이르쿠츠크」에서 몽고를 거쳐 북경으로 가는, 기차는 1주일에 한번밖에 다니지 않는 다고 했다.
북경행 1등간 기차표는 1백40「달러」였다. 머나먼 길을 생각하면 퍽 싸 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나의 심정은 새로운 세계를 여행한다는 설렘과 불안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호텔」에 돌아온 후 미국 집과 중앙일보 동경지사 박동순 특파원에게 전화를 건 다음 무료한시간을 달래기 위해「라디오」를 켰다. 「오페라」와「발레」공연선전이 유달리 많았다. 음악은 주로「클래식」인데「슬로·템포」의 애수를 띤 것과 정열적인 곡목이 번갈아 나와 여행자의 향수와 호기심을 자극했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