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은 감칠맛, 육질은 탄력 맑은 대구탕이 진짜배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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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호 22면

1 말린 생선은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메뉴지만 손자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

대구다. 누가 뭐래도 이곳 경남 겨울바다의 황제는 대구다. 크고 깊은 입, 부리부리한 눈에 마치 호랑이 얼룩 같은 무늬,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더 없이 어울리게 위풍당당한 몸체까지. 대구는 감히 황제라 칭해도 부족한 구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그 위엄이 대단한 생선이다.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10> 겨울바다의 황제, 대구

하지만 그 대구가 몇 년 동안 영 자취를 감춘 일이 있었다. 지나친 남획으로 거의 멸종 위기까지 내몰렸던 탓이다. 그래서 한때는 대구 한 마리가 쌀 한 가마니 가격을 호가하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는 팔렸다. 다른 이유는 없다. 아무리 비싸도 대구는 대구였으니까. 대구가 있어야 비로소 이 남쪽 바다가 남쪽 바다다워지니까. 하지만 1993년에는 단 한 마리도 잡히질 않았다. 아무리 비싸다 한들 아예 잡히지 않는 데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대구를 살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어쩌다 한 마리씩 잡히는 대구는 그 알과 정소를 따로 모아 인공수정을 시킨 후 시기에 맞춰 방류를 하기 시작했다. 단발로 그친 일은 아니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방류사업을 이어갔다. 그로 인한 효과는, 하지만, 금세 나타나지는 않았다. 차가운 바다를 찾아 북상하던 새끼 대구 중 많은 수는 아마 동해의 어부들에게 잡혀 노가리로 팔렸을 수도 있다.

그러던 것이 2003년부터 눈에 띄게 급증하기 시작했고 2007년에는 30만 마리 이상 잡히며 그 수가 회복됐음을 알려 왔다. 덕분에 나 역시 이곳 통영에 내려와 그동안 본 적 없고 경험한 적 없는 크기의 대구를 직접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대구맛 죽이는 고춧가루 · 마늘 범벅탕
사실 나는 대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외려 꺼렸다는 편이 나을 게다. 맛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대구탕을 맛본 곳은 여의도의 어느 지하 식당이었는데,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이었다. 같은 사무실의 부장님이 “어제 술을 너무 마셨나 봐”라고 중얼거렸더니 사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의 점심 식사는 자연스레 대구탕으로 결정됐다. 사회 경험이 없던 내게는 신기한 프로세스였지만, 그런 ‘고가’의 메뉴는 내가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

이미 10m는 늘어선 줄의 끝에 붙어 기다리다 맛을 본 대구는, 하지만, 마치 스펀지를 씹는 것처럼 퍼석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고춧가루와 마늘을 잔뜩 넣은 국물은 그 두 가지 맛만 났다. 도대체 이런 게 왜 그렇게 비싸게 팔리는지, 그걸 또 왜 그렇게 줄까지 서면서 먹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두 번째로 경험한 대구는, 먼 나라 노르웨이의 베르겐이라는 도시에서였다. 꽤나 큰 항구도시인 그곳에는 관광객에게, 특히 일본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은 어시장이 아침마다 펼쳐졌는데, 나는 거기서 한국으로부터 공수해 간 소주의 안줏거리를 찾다가 말려놓은 생선살이 담긴 비닐봉투를 발견하고는 얼른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간 아껴 가며 먹었던 고추장을 꺼내놓고 그 생선살을 한 입 씹었는데, 딱딱함이 마치 나무토막 같았다. 이가 부러지는 줄 알았을 정도다.

그제야 포장지를 다시 살펴보며 도대체 무슨 생선인지 찾아보니 ‘Cod Fish’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대구였다. 당시의 내가 20대가 아니었으면,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버렸을 게다.

2 대구의 최대 집산지인 거제 외포항의 전경 3 대구가 워낙 크기 때문에 손질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다 4 대구 맑은탕이 물릴 때쯤엔 찜을 해먹는 것도 좋다

몸통은 찢어 먹고 뼈는 육수로 … 반건조 대구의 묘미
이런 기억들을 갖고 있으니 내가 대구를 좋게 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 통영에서 첫 겨울을 맞이하고 시장에 대구가 깔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대구에 대한 이미지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눈에 봐도 물이 좋아 보이는, 그래서 어떻게 먹어도 맛있을 게 틀림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이곳의 작은 식당에서 싱싱한 제철 대구로 끓여낸 맑은탕 한 그릇을 먹었을 때 나는 대구의 진면목을 목도했다.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풍부한 국물과 한입 베어 물면 부드럽지만 특유의 탄력을 느낄 수 있는 육질이 감탄사를 이끌어 냈다. 캬아! 게다가 강한 양념을 배제하고 대구의 온전한 맛을 끌어내는 그 시원한 국물이라니!
그 후 나는 겨울이 되면 본가와 처가에 대구를 올려 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우리 부부만 즐기기엔 죄송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올해 역시 그렇게 대구 두 마리를 올려 보내 드렸다. 그런데 설을 맞아 집으로 올라갈 때 선물용으로 갖고 갈 생선을 고르다 말린 대구를 발견했다. 매년 겨울이면 대구를 구입하는 곳에서였다.

“대구 말린 거는 어떻게 먹어요?”

물메기처럼 국이나 찜을 해먹을 거라는 지레짐작과 함께 물었지만, 아주머니의 답은 달랐다.

“기냥 뜯어묵는 기지.”

예? 하고 반문을 할 틈도 없이 아주머니는 팔기 위해 진열해 두었던 말린 대구 하나를 잡아들더니 껍질을 벗기고 살을 뜯어냈다. 말릴 새도 없이 대구는 금세 상품성을 잃었다.

“괘안타. 울 아들도 대구 말린 기를 좋아해가 어차피 하나 묵을라 캤으니 이기 그냥 묵어라.”

아주머니가 건네 준 대구를 엉겁결에 받아든 나는 이래도 되나 싶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리고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먹었던 그 딱딱했던 대구의 아팠던(?) 기억과 함께 대구살을 씹었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쫄깃했다. 완전 건조가 아니라 반건조 상태였던 터라 식감이 좋았다. 조금 짜기는 했지만, 그 짠맛이 맥주를 떠올리게 하는 기특한 짓을 했기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몸통은 이래 죽죽 찢어 묵고 난중에 빼(뼈)는 푹 과서 육수 내 묵으모 뭘 옇든 맛이 좋지. 대가리는 뽈찜으로 묵으모 되고. 대구는 버릴 거 한 개도 읍다.”

계속해서 내게 말린 대구살을 건네주는 인심 좋은 아주머니는 먹는 법에 대해 간단하게, 하지만 충분하게 설명해줬다. 그래서 나는 그 말린 대구를 샀다. 이번엔 직접 집에 가지고 가기 위해서였다. 물론 참가자미도 좋고 도미도 좋은 계절이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 남해로 돌아온 대구만큼 동행하기 좋은 것도 없겠다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부모님이 가장 반기실 대상은 이제 곧 첫돌을 맞이할, 대구 치어처럼 활기찬 손자겠지만 말이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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