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삼권분립|조연현<문협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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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21일의 한·중 잡지인「세미나」에서 나는 『개발도상국에 있어서의 잡지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한바 있다. 그 발언요지가 신문언론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처럼 오해를 받을 만한 요소가 있는 듯하여 그때의 나의 본의를 다시 한번 밝혀 두려고 한다.
그 주제발표의 요지는 개발도상국에 있어서의 잡지란 ①계몽적·지도적 역할 ②신문에 대한 감시적·비판적 역할 ③문화 창조적 기능의 발휘등 세 가지 기능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이중에서 ②의 신문에 대한 감시적·비판적 역할이라는 부분이 특히 일부의 관심을 모은 것 같아 이 부분에 대해서만 약간 보충적인 언급을 해 두고자 한다.
내가 그곳에서 먼저 지적한 것은 신문과 잡지의 언론적 성격의 차이에 관한 것이었다. 신문이 보도적·해설적 성격을 띠었다면 잡지는 그보다는 종합적·연구적 성격을 띨 수 있으므로 신문의 일시적·순간적인 가치판단에 비해서 잡지는 그보다는 여유 있는 항구적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잡지의 성격에 미루어 신문이 숙명적으로 지니고 있는 가치판단이나 여론조성의 부동성을 잡지 언론이 감시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은 신문의 역할이나 사명을 과소평가 한 것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신문언론의 실수와 과오는 국가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론으로써 광정되는 것이 민주적 방식이므로 신문언론의 방향을 광정하는 역할을 잡지언론이 맡을 수밖에는 없지 않는가고 제의했던 것이다. 나의 이런 제의는 그 자리에서는 발언하지 못했지만 다음과 같은 현실적 배경과 나의 언론 삼권분립 논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었다.
현대에 와서 신문언론은 하나의 권력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언론을 흔히 제4부라고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을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군대나 경찰보다도 신문언론의 힘이 더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비단 총이나 칼만이 아니라 신문도 그것이 가능하다.
신문의 권력이 폭력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국가권력이 탈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중요하다. 신문이 아무리 인권을 존중하고 공정을 기하려 해도 무의식적으로나 또는 제작상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과오와 실수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문의 언론적 섭리를 언론적 방식으로 해결하는데 있어서 신문보다는 좀더 종합적·연구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언론적 형태가 잡지언론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잡지도 신문과 마찬가지의 과오를 범할 수도 있지만 신문과 잡지와의 언론적 성격을 비교할 때 잡지의 그러한 사명을 잡지 인이 갖는 것은 언론 전체의 상호 견제적인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활자언론의 유형을 구분해 보면 신문·잡지·서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나는 이3음의 활자언론형태가 각각 서로 분리 독립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의 횡포와 독주를 막는데 있어 이것이 중요하다. 신문언론을 잡지언론이 비판하고, 잡지언론을 서적언론이 비판함으로써 언론의 상호견제가 삼권분립의 정치체제처럼 이뤄질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물론 이중에서 신문언론이 가장 강대하므로 잡지언론이나 서적언론이 오히려 신문언론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잡지언론이 신문언론 앞에 비겁하지 않고 우선은 가장 미약한 서적언론이 그 영구성적인 가치의 힘을 꾸준히 신문이나 잡지에 반성의 기능을 발휘해 간다면 언론의 삼권분립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언론의 독주나 횡포를 방지하고 광정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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