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줄리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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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의 비극을 벌이던 곳은 「이탈리아」의 「베로나」였다. 여기에 두 사람의 동상을 세우느냐는 문제로 시민들이 대립되어 격론을 벌인 적이 있다.
「줄리엣」상만을 세우자는 의견, 두 동상을 다 세우자는 의견에 맞서 둘 다 세워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줄리엣」상 건립을 후원한 것은 「베로나」시의 관광과였다. 해마다 그녀의 무덤을 찾아 드는 관광객이 15만명이 넘는다. 따라서 관광자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줄리엣」은 그리 행실이 좋은 편이 아니다. 밤마다 몰래「로미오」와 밀회를 즐기지 않았는가 하고 반대했다.
이런 반대의견은 또 다른 반론을 일으켰다. 밀회가 왜 나쁘냐, 나쁘다면 「로미오」도 나쁘지 않겠느냐, 「줄리엣」을 나쁘다고 보는 것은 너무 여권을 무시하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줄리엣」상은 건립되지 않았다. 「줄리엣」을 나쁜 여자라고까지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동상을 세울 만큼 훌륭했다고는 볼 수 없다는 보수파의 여론이 이긴 것이다.
최근 착「타임」지는 서구 여성해방운동의 현황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여기 의하면 몇 해 전부터 미국 사회를 뒤흔들기 시작한 여성해방운동의 물결이 서구의 여러 나라에도 조용히 퍼져 나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그리 과격하지는 않다. 서구의 여성들은 오히려 내면적인 갈등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럴 법도 한 얘기다. 서구여성들이 살고 있는 가정이나 풍토는 미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새로운 시대의 참다운 여인상을 아직 정립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의 눈으로 볼 때 「줄리엣」의 품행은 조금도 문제되지 않는다.
또 「줄리엣」이 겪은 비극도 이제는 일어날 리가 없다.
사회가 달라지고 가정이 달라지고, 여성을 보는 남성의 눈도 「셰익스피어」의 시대와는 엄청나게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줄리엣」과 같은 여성이 이른바 여권을 완전히 누리게 된다면 그래도 여전히 「줄리엣」의 매력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인지. 이게 서구의 여성들에게는 몹시 걸리는 모양이다. 「줄리엣」이 여권을 누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당연하기도 하다. 다만 여권을 누리기에 앞서「줄리엣」의 내면 자체도 바뀌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실 여권의 확립은 「에이프런」의 추방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뭣이 참다운 내일의 여성이냐는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앞서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부닥칠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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