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개운 찮은 노벨 평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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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후사에 있어 정치인 사또 전 일본수상의 특징이라면 일본사람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오끼나와 반환문제를 미국과 타결, 실현시킴으로써 미-일간의 전후시대를 청산하고 일본을 새로운 태평양시대의 주역으로 등장시킨 점이다.
동시에 사또 수상시대에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등장함과 아울러 본격적 재무장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 제4차 방위계획에 착수함으로써 과거 일제에 유린당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다시 일말의 불안감을 준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또 전 수상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는 보도를 아침신문에서 보았다. 뭔가 개운 찮은 느낌을 받는 것은 필자의 편견 때문일까. 일본 사람들에게는 사또가 전후의 한 시대를 긋는 인물일지 모르나 그는 어디까지나 가까운 나라를 해쳐가면서 자기나라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본의 보수적 정치이념을 대변해온 인물이요 세계평화보다는 일본의 국가이익 증진에 골몰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수상이었을 때 아시아 여러 나라는 다시 한번 과거의 악몽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슈바이처나 하마슐드 같은 과거의 수상자가 민족이나 이념을 떠나 인류에 봉사했던 사실과 비교해보면 사또라는 새 수상자는 그들에 비해 인간적인 폭도 좀 좁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많다. 사또라면우리 한국 사람에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점은 지난 69년의 닉슨·사또 공동성명에서 나온 『한국의 안보는 일본의 안보에 긴요하다』는 그의 발언이다.
그러나 이 사또의 언명도 그의 후계자인 다나까 내각의 외상에 의해 최근 뒤집혀지는 듯한 기미도 있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는 사또 수상 소식을 명랑하게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정이다. 과연 노벨상 심사위원회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상을 주는 것인지, 사또 개인의 공적에 상을 주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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