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목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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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이없다. 아이들을 살인극의 도구로 삼는 그 심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근 빈번히 일어나는 엽기적인 살인사건엔 으레 아이들의 무참한 희생이 뒤따르고 있다.
아직도 우리의 마음속에 검은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는 지난여름의「이종대 사건」도 그랬다.
범인은 자신의 아이들을 마치 인형을 다루듯이 모두 살해했었다. 이번 서울 화곡동의 3남매사건도 역시 어린이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사건의 배경은 어찌되었든 순진한 아이들을 살해한 그 결과는 실로 전율을 자아낸다. 이제 겨우 5세 미만의 아이들이 범 의를 자극할 동기도, 의식도 있었을 리 없다. 그 가운데는 9개월 된 영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그 끔찍한 일을 당했을 것이다. 더구나 10대 소녀인 가정부 피살의 경우는 이중의 비극을 안겨준 셈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써늘해지는 일들이다.
이런 사건들을 볼 때마다 우리사회의 착잡한 단면까지가 함께 들여다보이는 것 같다 많은 경우 살인의 동기는 사회 부조리에 대한 광적인 반발 아니면, 불신풍토에 대한 단말마와 같은 발작 등으로 분석된다. 물질에 대한 맹목적인 탐욕은 곧 폭력으로 변질되기 쉬우며, 그것은 살인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그런 죄과를 사회부조리의 인과로 합리화하려는 범인까지도 우리는 자주 본다.
인간불신의 풍토도 역시 연원을 거슬러 가면 그것은 물질제일주의의 소산임을 알 수 있다. 이웃과의 정의는 사랑보다는 물질에 의해 멀고 가까우며, 모든 인간의 유대도 그런 허구에 얽매이는 것 같다. 이런 즉물 주의의 풍조는 인간의 가치를 한낱 물질의 가면으로, 아니면 탐욕의 장식으로 전락시켰다.
가령 결혼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해후) 이기에 앞서 속된 감각의 결합에 그치고 마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 풍조는「불신」을 낳고, 그 불신의 심리는 원한이나 저주의 감정으로 거칠어 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사회가 흔히 이런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충동에 의해 끔찍한 일들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의 후세들에게 어이없는 희생까지 강요하고 있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우리사회는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무엇인가 심기일전이 있어야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사회가 지향할 바는 탐욕의 경쟁도, 물질만능의 성취도 아닌 도덕적 풍조의 부단한 계발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에겐 그 땀의 보상이 흡족하게 뒤따른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믿는다면 사회의 분위기는 한결 새롭고 깨끗해질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인간신뢰의 풍토를 이루어줄 것이며, 그런 사회에선 생명의 가치와 그 존귀함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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