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조형물이 시를 읊네 … 실리콘밸리 광장의 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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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새너제이 멕키너리 컨벤션센터 광장에 설치된 건축가 양수인(38)씨의 작품 ‘아이디어 트리’(Idea Tree). 평소에는 음악이 흘러나오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말을 건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반응하는 점이 창의력 넘치는 실리콘밸리를 닮은 듯하다. [건축사진가 신경섭]

세계 첨단 벤처가 밀집된 미국 새너제이 실리콘밸리. 2011년 말, 새너제이시는 멕키너리(McEnery) 컨벤션센터를 증축하며 광장에 설치될 공공예술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주문은 다음과 같았다. ‘작품은 어떤 장르이든 상관없다. 단, 첨단 테크놀로지와 예술이 하나로 결합된 혁신적인 작품이어야 한다.’ 지난해 12월 초 새너제이 컨벤션센터 앞 광장에 대형(가로 12m, 세로 12m, 높이 6m) 철제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140여 개 팀이 경합을 벌인 공모전에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으로 낙점된 ‘아이디어 트리’(Idea Tree)다. 한국의 젊은 건축가 양수인(38·삶것 공동대표)씨가 만들었다.

 건축과 공공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작업해온 양씨는 요즘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받는 젊은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다 2011년 한국에 작업실을 열었다. 지난해 경남 남해에 에너지 절감형 주택, 일명 ‘소솔집’을 선보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 아이디어 트리에 대해 설명한다면.

 “단지 광장에 모셔놓은 장식물이 아니다. 조형물과 컴퓨터 프로그램이 결합돼 있어 주변에 사람이 다가가면 반응하고, 사람들이 남긴 말을 지속적으로 모으고 이것을 짧은 시로 재구성해 들려주는 오디오 장치가 안에 숨겨져 있다.”

 -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사람들이 각 메시지에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을 측정해 각 메시지의 인기도를 판단하는 기능도 있다. 사람들이 많이 듣는 메시지는 계속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메시지는 소리가 분해돼 음악이 된다. 오랫동안 내가 좋아해온 음악가 DJ 소울스케이프(박민준)와 협업한 것도 큰 보람이었다.”

 - 공모전에서 어떤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나.

 “조건에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라’는 주문이 있었는데 기술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건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트위터나 유튜브처럼 사람들이 참여해 콘텐트를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작품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실리콘밸리의 생태계와 닮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 건축가의 공공예술 작업은 낯설다.

 “새너제이시는 공모전을 알리며 작품이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못박지 않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아이디어를 찾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고정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철학이 읽혔다.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장소와 사람이 맺는 관계를 다른 각도로 들여다보게 해주고, 보다 자유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흥미롭다.”

 요즘 양씨는 다시 건축 설계에 푹 빠져 있다.

“개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축주 부부를 위한 서울 평창동 주택과 거제도의 ‘신개념 펜션’ 디자인을 구상하고 있다”며 그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남들이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양수인=연세대 건축공학과,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졸업. 실내의 이산화탄소 농도에 따라 스스로 환기하는 창문 ‘리빙 글래스’로 시카고과학산업 박물관에서 ‘이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중 한 명으로 선정(2006). 뉴욕건축가연맹 선정 젊은건축가상 수상(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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