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올림픽 메달 밭 … 인구 43만 '감자협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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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노르웨이 중부지역의 트뢴드라그. 긴 겨울과 아찔한 협곡, 감자로 유명한 지역이다. 인구는 43만 명 남짓, 서울 중랑구 수준이다. 지역 내 가장 큰 도시인 트론헤임은 노르웨이의 첫 수도(1030~1217)가 있었던 곳이고, 자연환경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배경으로 쓰였다.

 이런 트뢴드라그엔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겨울올림픽 강국 노르웨이의 금메달 산실이라는 점이다. 노르웨이가 스웨덴에서 독립한 후 19년 만에 출전한 1924년부터 획득한 겨울올림픽 메달은 모두 303개. 이 중 5분의 1이 트뢴드라그에서 나왔다. 종합순위 4위를 기록한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 9개 중 8개도 이 지역 주민의 업적이다.

 그렇다고 이곳에 특별한 스포츠산업이 발달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 감자 농장을 운영하고 돼지를 키운다. 크로스컨트리 스키 유망주 얀 토마스 얀센(17·사진)도 마찬가지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내 꿈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처럼 농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 ‘할 일’이란 소치 이후를 준비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이는 트뢴드라그에선 흔한 일이다. 바이애슬론 노르웨이 대회 우승자인 롯데 라이(18·여)는 “승리하고 돌아와도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엔 ‘스키를 신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 국민이 스키에 익숙하다. 스키 관련 종목이 많은 겨울올림픽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유리한 환경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역적 특성은 노르웨이 금메달 풍년 비결의 일부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WSJ에 따르면 비슷한 환경의 이웃 스웨덴이 지금까지 딴 겨울올림픽 메달 수는 노르웨이의 절반에 못 미치는 132개다. 인구는 스웨덴이 노르웨이보다 2배 많다.

 노르웨이인들이 ‘프리루프트슬리프’(야외활동)라고 부르는 특유의 정서가 겨울올림픽 강국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스웨덴만 해도 인구 밀집 지역이 자연환경에서 떨어진 곳에 있어 아이스하키 같은 실내 겨울스포츠를 선호하는 편이다. 노르웨이적 정서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트뢴드라그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밴쿠버 올림픽 4관왕(금 2, 은 1, 동 1)으로 이 지역 출신인 페테르 노르트허그(28·크로스컨트리)는 “유년 시절부터 육체적 노동에 참여해야 했다”고 말했다. 트뢴드라그에선 스키를 신고 이동하며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며 추위 속에서 단련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겨울스포츠에 적합한 육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소치 올림픽에도 트뢴드라그 출신이 대거 출전했으며 이 중 30명이 메달 유망주로 꼽히고 있다.

 엄격한 평등주의를 실천하는 청소년 스포츠 교육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스포츠 교육을 받지만 6세 이전 대회 참여는 금지된다. 11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대회에선 모든 참가자가 동일한 상을 받는다. 낙오자가 생기는 것을 막고 스포츠로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다. 정부가 운영하는 체육학교가 학업을 중시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트뢴드라그의 한 마을인 메라케르의 스포츠학교 교장 크옐 룬데모는 “운동능력보다는 학업성적을 보고 학생을 선발한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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