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번호판도 정부 통제 … 서비스 규제, 제조업 10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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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번호판 팝니다.”

 지난달 초 한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글이 올라오자 “얼마냐”는 답글이 줄을 이었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은 영업용 화물차를 뜻하는 노란색 번호판이 붙은 차만 택배업을 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이 늘어나면서 택배물량은 매년 20%씩 늘어나는데 정부는 이 번호판 발급을 꽉 움켜쥐고 있다. 업계 성화에 지난해 7월 번호판 1만여 개를 신규 발급했지만 그래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 바람에 1000만원에 달하는 웃돈을 내고 번호판을 거래하는 암시장까지 생겨났다. 생계형 업자들이 이렇게 규제 올가미에 갇혀 있는 사이 반사 이익을 누리는 곳은 따로 있다. 화물차 운수법이 아닌 우편법을 적용받는 우체국 택배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같은 일을 하는데 민간업체만 증차를 막는 것은 차별 규제”라고 말했다.

"놀이공원 공연 매주 신고해라”

 서비스업 규제 개혁이 선언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년간 20차례에 걸쳐 “서비스업 규제를 풀겠다”고 공언했다. 지난달엔 박근혜 대통령이 “고용창출력이 높은 서비스 산업을 살리기 위해선 가장 큰 장벽인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기업, 개인사업자의 규제 신음은 그치지 않고 있다.

 6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서비스업 규제는 4336개, 제조업은 1073개에 이른다. 공통으로 적용되는 규제를 빼면 두 산업 간 차이는 더욱 크게 벌어진다. 서비스업 규제(3601개)가 제조업(338개)의 10배에 달한다. 고용이 전경련 규제개혁팀장은 “대통령이 집중 육성하겠다고 꼽은 5개 중점 서비스업(보건의료·교육·관광·금융·소프트웨어)에 대한 규제가 전체 서비스업 규제의 47.6%에 달한다”고 말했다.

 규제 개혁이 쳇바퀴를 돌면서 서비스업의 경쟁력도 제자리걸음이다. 새 레저산업으로 정부가 키우겠다고 공언한 승마가 대표적이다. 승마장은 건축법상 운동시설이다. 운동시설은 초지법 규정에 따라 초지에 들어설 수 없다. 농어촌에서 체험형 관광을 위해 목장과 연계한 승마시설을 만들려고 하면 이 규제에 발목이 잡힌다. 올해까지 제주도 등 농어촌에 승마시설을 대폭 늘리겠다던 정부 청사진(2010년 8차 국가고용전략회의)은 공염불이었던 셈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연중 내내 공연을 하는 대형 테마파크는 공연을 할 때마다 일주일 전에 재해 방지 조치 사항 등을 시·구청에 신고해야 한다. 공연법 규정 때문이다. 이런 업체들은 별도로 지방자치단체 안전점검을 받고 있다. 더 좋은 공연을 만드는 데 쓸 시간을 이중적인 행정 처리에 쓰는 셈이다. 유환익 전경련 본부장은 “서비스산업 육성 대책이 계속 나왔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첫걸음인 규제 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규제 푼 뒤 육성책 내놔야 효과”

 설계 서비스에선 규제 때문에 외국 회사에 일감을 뺏기고 있다. 한 건설사 부장은 “외국 업체는 설계와 시공을 모두 다 하는 곳이 많은데, 우리는 건설업(공사)과 서비스업(설계)의 분류 칸막이를 걷어내지 못해 시너지 효과를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비스업 육성 계획과 규제 개혁을 따로 따로 해서는 백년이 지나도 서비스업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며 “규제부터 확실하게 걷어내야만 비로소 육성 방안도 현실성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황인학 한국규제학회 이사는 “이대로 규제를 방치하면 대한민국의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며 “대통령이 이런 심각성을 인지하고 리더십을 발휘해 법 개정의 최종 종착지인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훈·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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