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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법원의 도청자료제출 명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대법원은 24일 8대0 전원일치로「닉슨」대통령에게 도청관계 자료제출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닉슨」대통령은『실망했지만, 대법원의 판결에 승복하여 녹음「테이프」를 하급법원에 제출할 것』이라 했다.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라 하겠다. 미국대법원의 이번 판결에서「닉슨」대통령이 임명한「워런·버거」대법원장을 비롯한 3명의 대법원판사가 이 같은 전원일치의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 특히 주목할만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이들 세 대법원판사는「닉슨」쪽을 지지할 것이 아닌가 추측되었었는데. 그들 또한 이러한 판결에 합의한 것은 지난날 헌법에도 없는 위헌법률심사권을 승인한「마베리」대「메디슨」사건이래 가장 획기적인 판결로서 미국사법사상 영구히 기록될 것이다.
이 판결에서의 중요한 논점은 첫째, 대통령은 국가기밀을 보호하기 위하여 형사사건에서 증거제시를 거부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가? 둘째, 「워터게이트」사건담당 특별검사는 행정부의 기관이요, 대통령직속기관이기 때문에 그 분쟁은 행정부내부적인 것으로 사법권의 범위 외의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이 두 문제에 대하여 대법원은 명확히 자신이 관련혐의가 있는 형사사건에 있어서는 대통령은 증거제시를 거부할 특권이 없다고 했고, 행정부내부적문제에 대해서도 사법부는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판 시한 것이다.
대법원의 이 판결에 따라 대통령은 곧「재워스키」특별검사가 요구한 증거를 제시하고 「시리카」판사에게는 64개의「테이프」를 제출하게될 것이다.
이「테이프」들이「닉슨」대통령이 편집해서 이미 제출한 문서와 일치하는지, 아니면 하원법사위의 수중에 있는 편집된 녹음과 같은 것인지가 매우 궁금하다. 그런데 저 유명한 18분간의 공백이 있는「테이프」처럼 공백이 있거나 변조한 것이 드러나면「닉슨」대통령에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단서가 잡힐 것이 틀림없다.
때마침 25일에는 하원법사위는「닉슨」대통령 탄핵권고결의안을 상정하여 공개심의에 들어갔다. 하원법사위에서의 탄핵조항은 5개조로 되어있는데, 26일에는 이 조항에 대한 조항별 분리표결을 하게될 것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이 법사위에서의 탄핵동의안통과는 거의 확실시되며, 또 하원에서의 통과도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공화당내부에서는 지난 3월께부터「닉슨」대통령에게 대한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만일 그가 스스로 사임하지 않은 상황하에서 오는 11월의 중간선거가 행해지는 경우, 공화당은 대패할 것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닉슨」대통령으로서는 하원이 탄핵소추를 의결하면 상원의 탄핵결정직전에 자진 사임할 가능성이 증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상원에서의 최후의 한 표까지 싸울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속단은 할 수 없다.
다만, 미국 조 야에서는 탄핵문제 때문에「닉슨」이 초 대국 미국의 행정부 장으로서의 기능수행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위기가 논의되지는 않고 있는 것은 미국이『사람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법이 지배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행정부수뇌의 거취문제가 장기간 논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 동요 없이 정부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미국에는 헌법의 수호자인 대법원이 건재하기 때문이요, 연방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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