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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차관협정의 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미간의 잉여농산물도입계획에 어떤 차질이 있는 것으로 그 동안 추측은 해온 터이었지만, 막상 73년 연도분 협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1억30만「달러」규모의 차관이 백지화되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협정 이행 전망에 대해서 거듭 낙관을 시사해온 농수산 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백지화 방침이 지난 4월의 한·미 농상회의에서 이미 합의되었다면 이는 결코 성실한 정책자세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동안의 한·미 관계가 어떻게 얽혀 온 것인지, 그리고 73년도분 협정의 일부가 백지화된 배경이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바 없다. 그러나 우리의 식량사정으로 보나 외환 및 재정형편으로 보나 잉여농산물도입이 불가피한 것만은 사실일진대 기존협정의 백지화가 미치는 영향은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농수산 당국은 73년도 협정 분을 백지화시키고 이제 74년도 협정을 위한 교섭을 벌이고 있으며 그것이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75년7월까지 새 협정에 따른 잉여 농산물 도입을 완료시킬 것이라고 하나, 그것이 우리측의 계산대로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반드시 분명한 것만은 아니다. 73년도분 협정이 백지화된 이유가 분명하지 못한 이상 74년도분에 대한 교섭이 예정대로 진행되리라고 기대할만한 자료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차피 식량수급계획은 차질을 면치 못하게 되었음을 솔직이 인정하고 이처럼 식량정책에 차질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던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사후대책은 어떻게 집행해야하는가를 이제부터라도 깊이 검토해서 손실이나 국내식량문제의 교란요인을 극소화시키는 작업을 서둘러야 하겠다.
우선 지난 4월에 백지화에 합의한 것이라면 농수산부가 지금까지 그것이 집행될 것처럼 말해온 이유는 무엇이며 그렇게 정책을 운영해서 우리의 식량수급전망에 지장이 없는가를 솔직이 밝혀주어야 하겠다. 경제행정에서 국민의 심리적 반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실현되지 않을 가정을 전제로 해서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하는 태도가 반복된다면 도대체 합리적인 정책의 척도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을 잃을 때 파생되는 장기적 손실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음으로 74년도 협정이 예상대로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서는 언제나 그것이 집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례를 73년도분 협정의 백지화가 만들었다는 사실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
이행되지 않을 수도 있는 협정을 전제로 우리가 국민생활의 기본인 식량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너무나 불안한 것이다. 그렇다면 식량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근본적으로 허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원래 주권국가의 경제정책은 경제국방화라는 각도에서 보아도 식량과「에너지」원만은 가급적 자급해야하는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는 터라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저곡가→저생산→식량수입이라는 도식을 반복하는 듯한 기존정책기조는 재구성되어야 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농정의 기본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이 검토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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