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준율의 인하와 금융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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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금융기관의 예금증가율이 정체되어있는 한편으로 비축금융·재고금융·차관지보의 상환에 따른 자금부담 등 요인의 누적 때문에 금융기관의 자금수지는 계속 나빠지고 있다. 그 때문에 유동성규제의 범위가 축소되어 왔던 것이다. 이제 더 풀어줄 것이 없기 때문에 지준율을 인하하지 않을 수 없게되었다.
한은은 현행 지준율을 일률적으로 3%인하해서 8월1일부터 적용키로 했는데, 이는 불가피한 조치로 평가된다. 이번 지준율 인하로 금융자금은 5백26억원이나 풀릴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이 추가대출 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 동안의 금융정책을 돌이켜 볼 때 중앙은행이 금융정책을 사전적으로 경기국면에 비해서 집행했다기보다는 일반금융기관의 애로를 그때마다 사후적으로 합리화시켜 주는 조정기능에 주력했다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총수요억제를 운운하면서도 나갈 것은 모두 나가는 형식의 자금관리밖에 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모자라는 자금을 한은이 풀어주는 것이 금융정책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지준율을 3% 인하, 5백26억원의 추가자금공급원이 이론적으로 조성되었다고 해서 앞으로 금융이 완화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 동안에 일어난 자금부족을 메워주는 후속조치라고 할 것이며 신규자금의 조출 가능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물론, 종래의 일반은행 관습에 비추어본다면 지준율 인하로 자금부족이 일단 해결되었으니까 일정기간동안 추가대출을 해서 또다시 중앙은행의 사후조정을 불가피하게 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솔직이 말하여 예금동향이야 어떠하든 불경기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지금, 금융기관여신은 어차피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조업단축과 휴업의 범위나 정도가 확대될 조짐이 짙어진 경제동향으로 보아 어차피 재고금융·구제금융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러한 금융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중앙은행은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게 돼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그러나 재고금융·구제금융 등이 기업의 휴업이나 도산을 어느 정도 연기해주거나 막아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으로써 경기를 자극하거나 사태개선에 본질적으로 기여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경기정책에 대한「패키지·딜」을 전제로 하지 않는 금융조정만으로는 오늘의 경기국면을 적절히 유도해 나가기 힘들 것임을 외면해서 안 된다.
원리적으로 말해서 재고금융이나 구제금융은 불경기의 원인에 대한 대책이라기 보다는 결과에 대한 조정이므로 그 효과란 요컨대 사태악화의 억제에 있는 것이지 사태개선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 오늘의 불경기는 수출둔화와 내수정체라는 근본원인 때문에 심화되고 있는 것이므로 이 부문에 대한 대책을 서두르지 않고서는 금융마저 크게 교란될 것임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금융조정이외의 근본적인 대책은 모두「터부」시하고 있는 정책의 경직성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경기국면은 그 때문에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지적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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