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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정명훈군 소련 연주 여행기 본지독점|본사 주섭일 특파원 모스크바 공항서 극적 회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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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파리」주재 본사 주섭일 특파원은「모스크바」에서 열린 제5회「차이코프스키」국제음악제「피아노」부 2위를 차지하고 귀국중인 정명훈씨와「모스크바」에서 만났다. 주 특파원은 「파리」를 떠나 10일 하오7시(한국시간)「로마」∼「모스크바」경유 동경행의 소련국영항공「아에로플로트」기583편에 탑승, 11일 자정「모스크바」에서 정명훈씨와 합류, 상오10시40분 동경에 도착하기까지 10시간 동안 기상에서 회견했다. 다음은 주 특파원이 기상에서 얻은 정명훈씨의「모스크바」체류 1개월의 연주여행기. <편집자주>
「모스크바」공항 대기실에서 본 기자가 정씨를 만난 것은 현지시간으로 10일 하오5시30분이었다. 「로마」발 소련항공기「아에로플로트」편으로「모스크바」에 도착한 것은 이날 하오5시. 소련군이 항공 표를 검사한 후 보세구역에 들어갔으나 처음에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수많은 소련승객이 왔다갔다하는 틈새에서 다른 경유승객들과 함께 의자에 앉아 한참동안 두리번거리는데 엷은 분홍색「와이샤스」에 짙은 감색「코르덴」양복차림의 정씨가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신에 나온 사진만 보고 확인할 수가 없어 곁으로 다가가『당신이「피아니스트」정명훈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약간 놀란 듯한 표정으로 정씨는『내가 정명훈인데…당신은?』라고 응수해 왔다.
『나는 중앙일보「파리」특파원이오』라면서 명함을 주었더니 그제야 안심되는 듯 그는 나에게『어떻게 이곳까지!』라고 말하면서 놀라면서도 반가운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는 양복「백」과 조그만 검은색 가방만을 들고 혼자 있었다. 『먼저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의 이름으로 축하한다』고 치하하자 그는 활짝 웃었다. 『소감은?』 『기쁘다고 해야겠죠. 2등인데, 이곳이 소련이니까.』
우리들은 구내식당에 들어가 함께 사과「주스」로 목을 축였는데 정씨는 무척 피곤한 표정이었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 처음에는 날마다「피아노」연습, 경연참가, 마지막경연이 끝난 후에는 날마다「모스크바」의 유수한「심퍼니·오키스트러」와 협연을 했으며 또한 마지막 이틀은 소련 국영「레코드」사인「멜로디아」의「스튜디오」에서「하이든」과「쇼펭」의「소나타」독주를 취입하느라고 피곤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관광은 거의 하지 않았다. 관광이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1년 안에 다시 연주를 위해 이곳(모스크바)에 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정명훈군의 여행기>

<세계정상 다짐하며 출국>
지난 2일 새벽2시쯤「차이코프스키」음악경연대회의 최종심사 결과가「모스크바」의 유명한「차이코프스키·콘서트·홀」에서 발표되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고국에 계시는 부모님들의 기대에 조금이나마 보답했다고 생각했다.
비록 1등은 소련인「가브릴로프」가 차지했지만 두 번째로 내 이름 정명훈이 호명되어 두 차례의 예선과 본선을 통해「홀」을 초만원으로 만들어 열렬한 박수로 응원해 주었던「모스크바」의「팬」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지난 6월8일 서울을 떠날 때 부모님들의 격려와 경화누나의 충고가 순간 되살아났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제인 이번 경연대회에서 입선한 것은 나 스스로 행복한 기분이었다. 「차이코프스키」경연대회는 이번이 다섯 번째로 4년만에 한번씩 소련의 수도「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것이며 세계음악사상 불후의 명작을 수없이 남긴「차이코프스키」를 기리며 새 음악천재를 발굴해 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 음악대회에 참가키 위해 서울 김포공항을 떠난 것은 지난 6월8일 하오. 부모님들은 나를 떠나 보내면서 잘하라고 말씀하셨고, 특히 경화누나는『어떻게 하든지 정신을 집중해라,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주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간곡히 말했다.
동경행 JAL기 속에서 누나의 말을 되새기며 마음을 가다듬고 동경에 도착, 이튿날오전 출발, 목적지인「모스크바」에 하오4시에 도착했다.
나는「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마음속으로 세계음악의 정상에 기어이 도달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으며 처음 참가하게 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 특히 부모님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싸워야겠다는 생각에만 골몰해 비행기가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수많은 승객들, 주로 일본인들을 띠라「패스포트」검사 및 세관에서 간단히 수속을 밟은 다음 바로 공항「로비」벽에 붙은 노어, 영어 및 불어로 된 게시판 앞으로 다가갔다.
『「차이코프스키」경연대회 참가자는 공항에 설치된 임시 안내소로 오라』는 내용이었고 화살표시가 되어 있어서 따라갔더니 그곳에 이미 나의 안내자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인인 나에게 별로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듯하지는 않았으며 와 주어서 고맙다면서 반갑게 악수를 청해 왔다.
이때 너무 많은 나라 사람이 참가했기 때문에 한국음악가라고 해서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참가하는「피아노」부문에 만도 30여개국에서 80여명이 참가했으며 원래 참가신청한 사람은 1백 여명이었으나 20여명이 마지막 순간에 참가를 포기했고 북한과 중공에서는 단 한명도 오지 않았다.
안내원들은 나를 바로 검은색 승용차에 태워 약30분 동안 달린 후「붉은 광장」에서 얼마 안 되는「러시아·호텔」로 안내해 주었다.
이「호텔」은 미국이나 일본, 우리나라의 일류「호텔」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12층 현대식 건물이었으며 이번 대회에 참가한 청년음악가들은 모두 이곳에 숙박하기로 되어 있었다.
내방은 718호 12층에 있었으며 역시 이날 도착한 미국인「피아니스트」(그는 6등을 했다)「데이비드·라이블리」와 함께 같은 방을 썼다.
나는「데이비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지금까지는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으나 이번 대회를 계기로 친절한 친구가 되었다.
이날 저녁「호텔」식당에서「비프스테익」을 시켜 먹은 후 목욕을 끝내고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풀 겸 일찍 잠들었다. <3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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