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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돼야 할 위장·도피성 이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직 장차관·전직 대학총학장·공직단체 간부·실업인·변호사 등 지도층에 있는 l백 여명이 해외도피와 위장이민을 위한 여권을 소지하고 있음이 최근의 조사결과로 밝혀졌다. 적어도 이만한 경력을 가진 지도자들이 왜 조국을 버리고 해외에 빠져나가 위장이민 행세를 하려는 것인지 통탄스럽기만 하다.
이밖에 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른바「이중 국적자」로서 필요한 경우에는 외국여권을 행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국내여권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이와 같이 해외이민여권문제로 큰 말썽이 생기고 있는 근본원인은 결국 여권이 목적 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여권법 시행령은 이민여권의 경우에는 유효기간을 3년으로 하고 매회 2년씩 연장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일반여권을 가진 경우에는 외무부 장관의 일시 귀국허가를 받아야만 귀국할 수 있고, 단수 여권인 경우 일시 귀국 허가 없이 귀국하면 여권이 무효로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민여권 소지자가 장기 국내에 체류하고 있다는 것은 외무부 장관의 허가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므로 형식상으로는 불법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여권법에 따라 정식절차를 밟아 일시 귀국한 이민여권소지자에 대하여서는 체재기간이 끝난 다음에는 출국을 종용하면 될 것이요, 여권을 회수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직 장차관을 비롯한 고관들의 경우는 대개가 외교관 여권이나 회수 일반여권을 가지고 왕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외교관여권은 과거에는 기간 없이 발급되었기 때문에 그 소지자는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바, 이들에 대하여서는 그들이 이미 외교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은 이상 이를 회수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한편 회수여권의 경우, 발급은 외무부 규칙상 매우 까다롭게 규정되어 ①국영기업체의 임원과 해외지점근무직원 및 그 가족 ②정부의 위촉을 받아 빈번하게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자 ③재외국민으로서 거주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자 및 이에 준하는 자들이 그 발급대상자이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회수여권은 유효기간이 3년이요, 1회에 한하여 2년간만 연장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이것도 규정대로 기간연장만 안 해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원칙적으로 국민의 여행의 자유는 기본권에 속하는 일이며, 여권의 발급에 인색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서구 선진제국의 경우, 여권이란 우편국 창구에서 발급을 신청할 수 있을 만큼 손쉽게 교부되는 것이 상례요,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신청 받아 발급하고 있는 실정인데 우리나라의 여권발급은 어렵기로 이름나 있다. 이는 우리의 옹색한 외환사정과 안보상 필요 때문에 부득이한 제한이라 하겠으나 여권이 하나의 특권처럼 취급되어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에 있는 자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도피성 이민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신청자의 70%이상이 전직고관을 지낸 유지층이거나 고등교육을 받은「인텔리」들이어서 그보다 더 힘겨운 상황하에서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눈에는 그들의 도피행각이 정직한 국민을 비웃는 듯한 이화감의 원천이 되고 있음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또 외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조사하여 국민이 아니면 향유할 수 없는 권리·의무관계의 한계를 명백히 보여주어야 활 것이다. 외국의 국적을 자의로 취득한 경우, 우리나라의 국적이 자동상실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그들의 재입국에는「비자」발급으로 규제할 수 있으며 그들이 이중국적을 구실로 의무 없는 권리행사만을 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에 나가려는 국민들을 필요이상으로 죄악시하거나 규제하는 것 또한 결코 신명한 일은 아니다.
해외이주의 장려는 우리민족의 활로개척이라 할 수 있다.「로스엔젤레스」나「시카고」등에 한국 교포가 7, 8만명씩이나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민족이 미국에서 정착하여 국위를, 선양하는 길도 되는 것인 즉 해외이주를 지나치게 억제하는 것은 반드시 현명한 일은 못된다. 위장·도피성이민규제는 철저히 하되 다만 그것이 해외이주법의 정신을 말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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