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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야, 넌 오죽하겠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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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안기원(57·사진)씨는 8년 만에 올림픽 응원 채비를 하고 있다. 그의 아들 안현수(29)가 2006년 토리노 대회 이후 8년 만에 겨울올림픽에 나서기 때문이다. 그사이 아들은 러시아로 귀화해 빅토르 안(Виктор Ан)이라고 불린다. 4일과 지난달 28일, 두 차례 서울 종암동의 안씨 개인사업 사무실을 찾았다.

 올림픽을 기다리는 그의 마음은 복잡하다. 아들의 컨디션은 좋다. 안씨는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니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은 것 같다. 현수도 몸 상태가 좋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지난달 열린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안현수는 4관왕에 올랐다.

 러시아는 겨울스포츠 강국이지만 올림픽 쇼트트랙에서는 메달이 없다. 한국에서는 한물간 선수로 폄훼되기도 했던 안현수 덕에 첫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그는 500m·1000m·1500m와 5000m 계주에 출전한다. 러시아와 안현수는 3관왕을 차지했던 2006년 토리노 대회에 버금가는 성과를 기대한다.

 안씨는 “아들이 올림픽에 다시 나가는 게 참 기쁘면서도 착잡하다. 현수가 이기면 러시아 국기가 태극기보다 높이 올라간다. 얼마나 서럽고 슬픈 일인가. 내 마음이 이런데 아들은 오죽하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공정한 규칙 속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경기가 끝나면 서로 축하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 한국에서 상처가 깊었기 때문에 도리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빨랐다. 안씨는 귀화 과정에 대해 “러시아에서는 2009년 1월 현수가 부상을 당했을 때 치료와 재활을 책임질 테니 가자고 했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5년간 해당 분야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웠다. 2010년 한국대표 선발전이 열리기 전부터 러시아에 가려는 생각이 확고했지만 귀화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현수가 1년 정도 머물면서 환경을 접한 뒤 결정했다. 러시아로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안현수가 예전만 못하다’고 말하면서도 러시아에는 가지 못하게 훼방을 놓았다”고 털어놨다.

 안현수는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다. 러시아빙상연맹은 연봉 12만 달러(약 1억2800만원)와 생활비를 부담한다. 러시아어 개인교사까지 붙여줬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까지 안현수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유럽선수권에서 네덜란드 선수가 안현수에게 손가락 욕설을 하는 장면을 TV로 본 푸틴이 격노해 주최 측에 직접 전화를 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무엇보다 안현수는 마음이 편해졌다. 안씨는 “1등 아니면 안 되는 한국과 달리 러시아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축하해준다. 편을 가르지 않고 선수, 코칭스태프, 연맹 직원까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존중해주는 팀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현수가 다른 마음 안 먹고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했다.

 안씨는 오는 8일 러시아로 출국한다. 평소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평소 해오던 대로 하자”고 얘기해온 아버지는 또 하나의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어려운 환경 때문에 러시아로 갔지만 네 몸속에는 늘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잊지 마라.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라.”

 소치 올림픽 이후에 대한 계획도 세웠다. 안현수는 올림픽이 끝난 뒤 3월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한다. 당분간은 러시아에 머물면서 선수생활을 하겠다고 한다. 안씨는 “나이(2018년에 33살)가 좀 있지만 현수가 2018년 평창올림픽에도 나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개인전은 어렵겠지만 전력으로 2바퀴를 도는 단체전은 자신 있다고 하더라 ”고 말했다.

김효경·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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