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의 와중서도 독야청청 하던 키신저, 사임위협으로 언론에 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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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에서는 도대체 영웅이 살아남지 못한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워터게이트」의 탁류 속에서 그 동안 독야청청 하던 「키신저」까지 『창백한 얼굴에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목멘 음성으로』 백악관 도청사건과 관련된 자신의 누명을 벗기지 않으면 사임하겠다고 말하는걸 보면 「워싱턴」의 풍토가 그런 것이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키신저」의 폭탄선언에 「험프리」 「머스키」 「재비츠」 「골드워터」 「앨버트」같은 중진들은 「키신저」사임은 비극을 의미한다고 펄쩍 뛰었다.
「키신저」의 사임위협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의회처럼 「센티멘털」하지는 않다.
「워싱턴·포스트」 사설은 「잘츠부르크」 폭탄선언은 19세기의 「오스트리아」 외상에게나 어울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뉴요크·타임스」의 「레스턴」은 「키신저」가 낡은 말썽을 새로운 위기로 몰고 간다고 말했다.
「레스턴」이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키신저」는 자신을 「닉슨」 대통령과 나란히 무책임한 언론의 피해자로 만들어 놓고있다.
따라서 「키신저」 의도와는 상관없이 「닉슨」은 하원 법사위와 신문의 신뢰성을 떨어뜨림으로써 자신을 구제하려는 작전수행에 뜻밖의 동맹군을 얻게된 셈이다.
「레스턴」은 「키신저」의 사임위협을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간에 행한, 잘못된 발언』이라고 판단했지만 「키신저」가 거둔 실제적 효과는 컸다.
그는 「닉슨」이 2백만 시민들의 열광이 기다리는 「카이로」 도착 전야라는 순간을 포착하여 「텔레비젼」화면을 쫓는 미국 시민들의 관심의 끄나풀을 죽 잡아끌어 가지고는 저쪽 끄트머리에서 느닷없이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잘츠부르크」는 여름마다 음악제가 열려 「폰·카라얀」의 지휘봉 끝에서 「지그프리트」 「파르지팔」 「트리스탄」같은 『가장 고독한 영웅』이 절규하는 곳이다. 「키신저」가 언론이라는 『우상 파괴자』들에게 도전하는 무대로서 「잘츠부르크」는 가장 이상적일지도 모른다. <워싱턴=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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