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양입 제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내가 어릴 때 옆집에 산전뙈기 몇 마지기를 부치고 품팔이나 해서 호구를 해 가는 빈한한 한 가족이 살았는데 평소에는 거의 끼니를 잇지 못하다가도 추수 때나 목돈이 생길 때면 부잣집 못지 않게 먹고 쓰고 하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은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자식들도 남의 집 살이의 신세를 면치 못했던 것으로 안다.
어떤 고을 어떤 마을을 놓고 보더라도 3대를 계속해서 가산을 유지하고 부자소리를 듣는 집안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은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고 벌어 먹고 사는 수단이 다양해지고 경제가 복잡해져서 이러한 통계를 내기가 어려울지 모르지만 지금이나 옛날 농사나 짓고 살던 때나 또 개인이나 국가나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잘 살고 영구히 번영할 수 있는 원리는 간단하고 가까운데 있는 것이다.
영구히 잘 살수 있는 길이란 「양입 제출」 즉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을 제약하는 원리 이외에는 없다. 그리고 이 양입제출이란 말은 대단히 평범하고 단순한 말같이 들리지만 살림살이에 있어서 이 원칙을 엄격히 지키는 사람은 흥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망하는 것이 천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평범한 원칙을 학생들한테도 이야기하고 공무원들한테나 처자들에게도 이야기한다. 한 달에 10만원의 수입이 있는 사람이나 5만원 또는 2만원의 수입이 있는 사람이나 각각 그 수입의 범위 안에서 생활하고 여유를 남겨서 저축하는 데에 번영의 길이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아무리 수입이 많다 하더라도 살기 위해서 수입이상의 지출을 하게되면 빚을 지든지 도둑질을 하든지 하는 수밖에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은 가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하고 마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급공무원들에게 하면 지금 도시에서 한 가구의 최저 생활비가 얼마나 드는데 2∼3만원의 월수입으로 빚 안 지고 손 안 벌리고 어떻게 사느냐고 항의한다.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월급가지고 못 살거든 월급이 더 많은 곳으로 옮기려고 노력하든지 자기 가정의 생활을 조정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
또 한 가구에 한 사람만이 벌어서 먹고산다는 법은 없으니 노동력이 있는 모든 식구가 합심해서 근로정신을 발휘함으로써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이 말이 세상물정에 어두운 잠꼬대 같은 소리라고 비웃음도 받았다. 그러나 잘 살수 있는 길은, 그리고 떳떳하게 살수 있는 길은 이길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입고 싶은 것도 못 입고 내핍 생활을 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요 견디기 어려운 일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나 이것을 참고 이겨 나가는 데에 발전이 있고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양입 제출은 다시 말해서 분수에 맞는, 또는 분수를 지키는 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3백 「달러」의 국민소득을 가진 국민은 그 소득에 알맞는 생활을 해야 될텐데 그렇지 않고 3천「달러」의 소득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정도를 그대로 본 딴다면 그 생활에 파멸이 올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사람의 생활이란 잘 살수 있는 앞날을 내다보고 그날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라면 오늘날우리의 소비성향이나 사치풍조는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닐까. 이래서는 경제가 아무리 고도성장을 하더라도 개인의 살림에는 구멍이 뚫릴 것이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모든 부정과 부조리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양입제출의 생활을 영위하여 영구히 안전할 수 있는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신기석 <국회의원·학술원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