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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계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로다』.(시편121장1절∼2절)
하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산과 들로 나갑니다. 교인들도 더욱 많이 나갑니다. 물론 대도시 공해 속에서 시달리다가 공해를 벗어나 대자연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하고자 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자연을·통하여 영감을 받고 마음이 통쾌함을 얻어야합니다.
한개의 암석이나 무명의 화초 중에서 하느님의 솜씨와 영광을 보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신약성경 「로마」서 1장20설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의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었나니, 그러므로 지혜가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서에 신과 자연에 대하여 여러 가지 사상을 볼 수 있습니다.
1, 자연은 신의 피조물이요
2, 자연은 신의 표현이며
3, 자연은 신을 찬양하며
4.신은 자연을 보호하고 자연을 부흥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기를 우리 인류에게 계시하신 것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성경이오, 다른 하나는 자연입니다. 성서 중에서 깨닫지 못하던 것을 자연에서 발견하고, 자연에서 깨닫지 못하는 것을 성경에서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친 성경 친 자연입니다.
과학자는 자연의 현상을 관찰하고 시인은 자연의 미를 완성하며 실업가는 자연의 이윤과 재원에 착념하고 종교가는 자연에서 우주의 대 영과 위대한 교훈에 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사야」선지자는 초고낙화를 볼 때 오늘 있다가 내일 떨어지는 화초로 인하여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았고 공중에 나는 새를 보며 하느님의 사람을 증거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은 첫째 인위의 소규모와 천연의 대규모입니다.
사람은 지면일우에 작은 울타리를 두르고 작은집을 짓고 그 안에 산수를 그린 그림과 화초를 그린 그림을 불이고 그 안에서 기거 동작합니다. 그러나 이제 대자연 위에 서서 보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옛날 진묵대사의 시중에도 천금지석산위침하고 운비월촉해작저하여 반취거연잉기무하니 각혐장수괘곤륜이라 하였으니 천지는 우리의 집이 되고 대평원은 우리의 정원이 되고 산강산 산화초가 우리의 포원이 되고 백운기기봉이 우리의 벽화가 되고 풍성 수성 조성이 우리의 「오키스트러」가 되고 신은 아버지가 되고 성신은 어머니가 되고 예수님은 형님이 되고 사해지내인류는 형제자매가 되니 이 어떠한 대규모입니까? 둘째로 자연 속에서 하느님께 엄숙히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초목은 창세 초에 받을 자세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읍니다. 자연은 엄숙히 하느님께 경배함니다. 봉접은 춤추고 새는 노래하여 하느님을 즐겁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속에 나와서도 하느님을 찾지 못하고 도리어 하느님을 노엽게 하고 죄를 범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연계에 나와서 하느님을 모시고 죄를 회개하고 하느님께 경배하고 새로운 생활로 변하여 봅시다.
세째로 백세풍상의 노송과 천세불마의 해암을 보고 우리의 마음을 굳게 해야 됩니다.
무슨 소식을 전하고 무슨 느낌을 주는가? 말없이 주는 교훈! 오호라 인생이여 어이타 그렇게 조석으로 변하는가? 다시 한번 마음을 굳힙시다.
정의의 노송에 의할지어다. 【김윤찬 목사<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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