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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와 간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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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웬지 영어로「스파이」라면 지극히 낭만적인「이미지」를 풍긴다.「스파이」의 생활이 「드릴」에 차고 멋지다고 여겨지는 때문인가 보다.
007영화에 나오는「제임스·본드」에는「더스코·포포브」라는 실재인물이 있다. 2차 대전때 영국정보 부를 위해 독일에서 이중「스파이」로 암약했던 그는 지금은 60이 넘었지만 「리비에라」에 있는 궁전과 같은 별장에서 유유자적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여「후버」FBI국장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급 환락가에 주야로 드나들던 자기의「플레이보이」생활이 미덥지 않았던지 그 정보를 후버가 매장시켰다는 글을 최근에 발표하였다.
「포포브」는 예외에 속한다. 대부분의「스파이」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래도「스파이」의 생활은 매우 화려하고 자극적이리라고 사람들은 상상한다. 중세기에「스파이」들이 가장 음유시인으로 분장했던 추억이 살아 남아있는 탓인지도 모르겠다.「스파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간첩이 된다. 그러나 간첩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연상시켜주는 것은 다르다. 몹시 음산하고 잔인하다. 그리고 공포의 대상이 된다.
「스파이」란 원래는 적의 정보를 입수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누구에게 직접적인 가해를 하는 일은 없다. 서양에서「스파이」가 증오보다는 오히려 동경이나,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런 때문일 것이다.
간 자나 첩자의 본래의 뜻도 적중에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북괴가 내려보내는 간첩은 그렇지 않다. 지난 4일에 자수한 간첩 조찬환이가 폭로한 얘기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가 밝힌 바에 의하면 그는 이른바「대남폭력투쟁계획」에 따라 민가에 대한 폭파·방화는 물론이오, 대공관계요인 암살의 임무지령까지도 받고 남하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북괴의 간첩은「빨치산」과 같은 파양 전투대원이지 조금도「스파이」랄 수는 없다. 최근에 이르러 더욱 이런 무서운 간첩이 수없이 남파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 동안에 많이 잡히기도 했지만 아직 얼마나 더 많은 남파간첩들이 우리네 주위에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지나친 불안은 금물이다. 간첩이란 말에서 우리가 위험과 두려움을 연상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반공교육이 잘 보급된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간첩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해도 간첩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우리를 노리는 북괴의 간첩들이「제임스·본드」나「마타하리」와는 전혀 다른 인물들임을 잘 알고 있는 동안은 그들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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