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계 경제질서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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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연연 3주간에 걸쳐 열렸던 유엔자원총회는 지난 1일 밤 표결 없이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와 행동준칙을 규정하는 선언문을 채택함으로써 그 막을 내렸다.
다수 자원보유후진국의 큰 기대와 여타 선·후진 각국들의 주시 속에서 열린 자원총회의 성과는 그 핵심이 이 선언문안에 집약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의하면 현재의 국제경제질서는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빈부격차를 조장하는 식민주의적 경제질서이고, 세계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는 자원국들의 자원에 관한 주권확립, 자원수출규제 및 그 가격의 자율적 결정권이 존중되어야하며, 그러기 위한 행동계획으로서는 이같은 목표달성 과정에서 타격을 받는 빈곤국들을 지원하기 위한 일련의 구체적 조치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3주전의 떠들썩했던 회의분위기로 보아서는 퍽 미온적이요, 말하자면 냉정을 되찾은 선언이자 행동계획이라 하겠다. 가령 자원국유화문제만 하더라도 그것은 자원. 보유후진국들이 천연자원의 항구적 주권확립을 위해 외국자본의 지배하에 있는 자국자원의 국유화를 단호히 관철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열렬했으나, 이번 선언문에서는 각국의 의견불일치로 결국 이 대목조차 제외되고있는 것이다.
이처럼 애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온건한 선언을 남긴 이번 회의에 대해 일부 과격한 나라들은 실망을 할는지 모른다. 자원총회를 단순한 선언문의 채택으로 만족하지 않고 행동계획을 위한 장으로 만들려고 기도했던 일부 자원국들에는 이번 총회에서 채택된 행동계획을 위한 준칙도 여전히 관념적인 미사여구를 늘어 놓은데 불과한 선언문으로 비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후진국 77개국이 유엔 무대에서 자원총회의 개최를 실현시킨 것은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다. 또 그것은 후진국의 이익을 반드시 일거에 성취하여야하겠다는 강한 의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만큼 자원총회는 과격한 성격을 띤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총회는 가까이는 지난2월의 석유소비국회의에 대한 석유자원국 주동하의 정치적 반격이라 할 수 있고, 길게는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가 지난 10년 동안에 시현한 공소한 실적에 대한 실망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후진국들은 석유자원국 들이 취한 직접적 행동이 훨씬 실효있는 방법임을 깨닫고 결국 이번과 같은 회의를 열었던 것이다.
현재의 국제경제질서는 허다한 유엔회의와 선언에도 불구하고 후진국들에는 불리하고 공업선진국들에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었다. 1950년 이후의 경향만 보더라도 후진국이 수출하는 일차상품가격은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계속 불리하였고, 70년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회복세를 보였을 뿐인데 선진공업국의 제품값은 계속 오름세를 보여줌으로써 선후진국간의 빈부격차를 확대해 왔던 것이다.
77개 후진국들이 자원총회를 통해 노린 것은 이와 같은 선·후진국간의 국제경제관계를 타파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단기적으로는 일차상품인 자원의 항구적 주권의 확보에 관한 문제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선후진국간의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새로운 경제질서확립에 관한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번 총회가 그나마 자원부족후진국의 원조를 위한 특별기금을 마련할 것을 결정한 것도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작으나마 성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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