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봄을-이추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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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습기 높은 파알간 들길의 오후한때
묵은 눈 녹아 흘러 산 꽃피는 더운 바위 속
끈적이는 기침소리 같은 바람소리 절묘하다.
뼈 쑤시듯 일상 속에 한숨만 쉬다가
떠나신 어버이혼령 십수년만에
문득 뵈는건 산에서 봄을 만나는 탓일까.
무게로 꽉찰 가을 산의 길고도 긴 끈에
방정맞게 코끼어 끌려가는 봄의 산
흐르는 무늬로 얼룩지듯 산길 대리는 나.
20여년전의 아내반지가 전당포 금고에서
벌레까지도 고운 들길을 갈망한다.
진달래 포근한 산길의 아지랭일 열망한다.
폭파약 닥쳐오는 불줄 속 방금 끼어서
녹아서 물 속의 모래로 돌아갈걸 원한다.
달러이자 얻어서 끓인 죽그릇을 마시고 아내여
미안하지만 지금의 나는 임진강 못 미쳐
생선횟집 옆 구멍가게서 막소주 몇잔을 보약처럼
마시고 봄 강을 보니 살 것 같다. 봄 하늘 보니
아름답다.
근로자 혹은 시인의 아내이기 때문에 불쌍한
여자들 참고 겪어야한다. 이겨야한다. 우리는
항상 꿈에 짓눌려서 내일쯤에 취해서 또 술에
녹아서 쉽진 않지만 겪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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