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통진당 강령에 공산주의 말만 안 했지 다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전문에선 ‘민주, 평등, 해방의 세상’이라고 했는데 이걸 ‘자주, 평등, 인간 해방’이라고 했다(고쳤다). 공산주의라는 말만 안 했지 다 들어가 있다.”

 2011년 6월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전신) 정책당대회에서 당시 최규엽 강령개정위원장이 한 말이다. NL(자주) 계열이던 최 위원장은 ‘진보적 민주주의’ 도입을 골자로 한 강령 개정 추진 과정에서 PD(평등) 계열 당원들이 반발하자 이렇게 설명했다.

 이전 강령에 포함돼 있던 ‘사회주의’란 말은 보수 세력의 반발을 감안해 삭제하지만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제로는 공산주의와 같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취지였다. 최 위원장은 같은 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민노당 후보로 선출돼 민주당 박영선-무소속 박원순 후보와의 야권연대에 참여했다.

 본지가 입수한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초 왕재산 간첩 사건 당시 민노당은 북한으로부터 “진보정당 통합 시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도 이념으로 관철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2004년과 2006년 PD계열과 격돌한 당직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을 장악한 NL 계열이 강령 개정을 밀어부쳤다.

 법무부는 28일 헌재 심판정에서 열리는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소송 첫 심리에서 최 위원장의 해당 발언이 포함된 회의록 등을 제출한다. ‘진보적 민주주의=(북한식) 사회주의’란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로서다. 또 통진당 기관지인 주간 『진보정치』와 월간 『이론과 실천』에 실렸던 각종 문건들도 증거로 낸다. 여기엔 통진당의 최고 이념이 ‘진보적 민주주의’라고 적혀 있다. 통진당이 스스로 만든 자료들을 중점적으로 내세워 위헌성을 강조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파워포인트 자료를 준비하고 일요일인 26일에 시내 모처에 모여 리허설을 수차례 반복했다.

 이는 법무부가 지난해 통진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소송을 제기하며 “통진당은 창당 목적과 정당 활동이 모두 위헌적”이라고 밝힌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정점식(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TF팀장은 “진보적 민주주의는 김일성의 주장을 도입한 것으로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계급투쟁을 주장하고 있고, 궁극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 정권 수립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부가 헌재에 제출한 2009년 민노당 ‘집권전략보고서’에는 “한국은 예속된 천민적 자본주의 사회이며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근원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통일이 과제다”라고 적혀 있다. 지난해 7~8월 나온 『진보정치』엔 “종속적 한·미 동맹 체제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며, 민중의 정치적 진출을 억압했던 국가보안법을 해체하고 각종 관료기구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일상화한다”는 주장이 일관되게 나온다. RO 사건으로 구속된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2012년 8월 통진당 진실선본 해단식에서 “진보적 민주주의의 어원은 (김일성) 수령님께서 건설할 때 우리 사회는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여야 한다는 노작에 있다”고 한 녹취도 증거로 제출됐다.

 ◆황교안 장관 심리에 참석=28일 첫 심리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직접 참석한다. 그는 소송 대표자로서 청구 취지와 이유를 설명하고 심리 내내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황 장관 역시 27일 리허설을 했다. 법무부는 또 이날 권성 언론중재위원장을 소송의 새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판사-헌법재판관 출신의 권 위원장으로부터 법리와 절차에 관한 다양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권 위원장은 이날 언론중재위에 사표를 냈다.

이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