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축소에도 돈 들어온 한국, 충격 제한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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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지수가 전날보다 30.22포인트 하락해 1910.34로 마감한 27일 오후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딜러들이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채무불이행 위기가 확산되면서 코스피지수는 오전 한때 19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이날 기록한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8월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박종근 기자]

신흥국발 불안에 국내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27일 증시가 열리자 마자 외국인들은 ‘팔자’에 나섰다. 5393억원을 순매도했다. 올 들어 가장 큰 규모다. 그나마 국내 기관들이 외국인들이 내놓은 매물을 적극 사들이면서 낙폭이 줄었다.

 불안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파장의 크기에 따라선 코스피 지수가 1800선 중반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 연초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우리 증시는 심한 내우(內憂)를 겪었다. 여기에 외환(外患)까지 겹친 것이다. 신한금융투자 양기인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 자금이 한번 안전자산으로 숨은 뒤 다시 고개를 내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면서 “증시 불안은 다음달 중·하순 이후에나 진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위기가 신흥국 시장 전체로 전염되지만 않는다면 직접적인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또 신흥국을 일시에 덮친 파고가 잦아들기 시작하면 각국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따라 차별화된 흐름이 나타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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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시장은 이번 위기를 어느 정도는 예상해 왔다.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달러의 대이동’이 빚어낸 부작용이다. 지난해 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돈 풀기(양적완화)의 속도를 줄이기로 하면서 글로벌 자금은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급속히 환류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국지적 충격은 불가피하고, 약한 나라들부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란 게 시장의 예상이었다. 하나대투증권 조용준 리서치센터장은 “아르헨티나 사태를 변곡점으로 예고된 파장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쉽게 잠잠해지기는 힘들 것”이라면서도 “금융위기 때와 같은 수준 혹은 신흥국 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앞으로 한국이 신흥국과 한 무더기로 묶여 휩쓸리느냐(동조화), 아니면 다른 모습을 보이느냐(차별화)다. 현재까지는 ‘차별화’에 무게가 가 있다. 이미 한 차례 경험이 있다. 지난해 중반 미 연준이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를 시사한 뒤 신흥국 시장은 동시에 휘청거렸지만 이후 불안이 조금씩 걷히자 시장별로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한국시장으로는 오히려 외국인 자금이 들어왔다. 경상수지가 꾸준히 흑자를 보이고 있고, 외환보유액(3464억 달러)도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한국이 ‘안전지대(safe haven)’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한국과 멕시코, 필리핀을 ‘테이퍼링의 위험’에 가장 덜 노출된 신흥국가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미 주가가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도 뒤집어보면 위안거리다. 터질 거품이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무서운 건 예상치 못한 악재다. 전문가들이 신흥국발 불안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는 이유다. 선진국은 식어버린 신흥국의 ‘성장엔진’을 대체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안에 이 기대가 어긋나버리면 ‘세계 경제 회복’이라는 전제 자체가 틀어져버릴 수 있다. 한편에선 신흥국으로 수출을 많이 하는 중국의 경기가 자칫 찬물을 뒤집어 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글=조민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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