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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돈 74억 끌어낸 빈털터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74억원이라는 거액을 부정 융자했다하여 금융가를 발칵 뒤집어놓은 박영복(39)은 3, 4년전만해도 무일푼의 선원이었다.
지난 연초 모은행부정사건에관련, 검찰수사에 의해 덜미를 잡힐때까지 불과 3년 남짓한 기간동안에 금록통상등 18개의 기업체를 거느리는 청년재벌로 은행가에 군림하게 된데는 어렸을때부터 알려진 비상한 두뇌와 재주때문이라고 그를 아는 사람들이 말하고있다.
박의 고향은 대구. 고향에서 고교를 나온뒤 부산 해양대학에 진학했고 졸업후에는 해운공사의 외항선원으로 5년동안 근무했었다. 선원시절, 능란한 영어와 사교술로 외항선원들 사이에 이름을 날리기도. 한때 연탄공장을 경영하기도했으나 71년 그가 금록통상을 설립한후 그의 숨은 실력을 서서히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변통을 해서 10억원의 사채를 얻어 중소기업은행에예금,「무명의 청년재벌」로등장했다.
확실치는 않으나 그당시 그의 뒤에는 요직에 있던 모씨가 도와준다는 소문과 그와는 서로 형님아우하는 사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렇게 은행에 얼굴을 알린뒤부터는 몇몇 토지사기「브로커」들과 관켸를 갖고 그들을 통해 부산·대구등지의 부동산을 물색, 그소유권 명의를 자기앞으로 변조하여 은행에 담보로 넣었다.
그의 첫 희생대상이 된 모은행은 그의 예금잔고등에 비추어 안심하고 4억8천만원이라는 큰돈을 선뜻융자해주었다.
예금유치에 쫓기는 은행원의 심리적 허점을 악용한 것이었다.
그는 이용자금을 밑천으로 행원들에게 생색을내며 위조한 부동산소유권과 수출신용장을 담보로 계속해서 각 은행을 돌며 부정대출을 받아내고 재벌답게 호사스런 생활을 즐겼다.
「살롱」·「나이트·클럽」등에서 반반한 「호스티스」를 모조리 불러놓고 5만∼10만원씩의 「팁」을 뿌리는가하면, 몇몇 애인들에게는 뒷돈을 대주며 비밀요정을 경영케 하기도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위해 3곳에 집을 마련, 주민등록이 되어있는 집과 가족이 사는 주거지, 관계서류를 은닉해두는 집이 따로있었다.
그의 정체가 처음 드러난 것은 지난 1월27일의 은행감독원 감사때. 이보다 앞서 70년에는 감금혐의로, 71년 및 72년에는 관세법위반혐의로, 73년에는 사기혐의로 해마다 각급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았으나 그때마다 용케 법망을 벗어났었다. 이중 72년도의 관세법위반사건은 검찰이 구속기소까지 했으나 3개월만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조사에 의하면 그의 개인재산은 신당동집등 2, 3억원 정도. 그의 지능수준으로보아 해외도피재산이 상당하리라는 추정은 가나 아직은 밝혀지지 않고있다.
신기루처럼 세워졌던 그의 숱한 회사들은 거의 문을 닫았고 3개만이, 그나마 조업을 하고있는 회사도 간판을 내렸고 사무실은 비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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