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동포동한 얼굴, 뽀얀 피부의 티모시 송(4)군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는 풍선을 들고 셔츠가 땀에 젖을 때가지 누나 클레어(6)와 함께 온 집안을 헤집는다.
라미라다에서 만난 티모시는 밝고, 건강했다. 지난 2일, 무사히 네 번째 생일을 맞은 이 아이의 얼굴을 보면 3년 전 본지를 통해 '골수 기증자를 찾는다'며 다급하게 호소했었다는 사실을 잊게 될 정도다. 당시, 티모시의 병명은 '만성육아종증(CGD)'. CGD는 백혈구의 면역체계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희귀질환이다. 아시안골수기증협회(A3M)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된 CGD 환자 사례는 티모시가 유일하다.
티모시의 골수 찾기는 한인들의 관심에도 결코쉽지 않았다. 생후 2개월 때 발병해, 2012년 2월18일 골수이식 수술을 받을 때까지 엄마 앨리스(40)씨는 집요하게 병원을 찾아다녔다. 전국의 의사들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몇 시간씩이고 아들의 증상을 알렸다. 신문과 개인 블로그(www.alicesong.com), 한인 교회를 찾아다니며 골수기증을 부탁하기도 했다.
텍사스 휴스턴에서 17명의 CGD환자를 살렸다는 병원을 발견했을 땐, 4식구가 짐을 싸 7개월간 머물기도 했다. 혹시나 밖에 나가면 아들에게 균이 옮을까, 식구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늘 붙어있었다. 오직 팀(Tim)을 위한 팀(Team)이었다.
"모든 생활이 아들의 검사 결과에 따라 움직였어요. 처음엔 '왜 우리가, 왜 티모시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해?' 하며 많은 날들을 보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한 게 많아요. 어릴 때 병을 발견했고, 좋은 의사를 만났고, 골수이식에도 성공했고요. 아들 때문에 만나게 된 사람들도 많아요. 생면부지의 티모시를 위해 기도를 해주고, 몇 시간씩 걱정해주는 사람들이죠."
골수이식이 끝난 후에도 시련은 있었다. 수술 1년 후, 완치됐다고 믿었던 티모시의 혈소판.백혈구 수치가 널을 뛰듯 왔다갔다하자 잠시나마 평온했던 나날은 또 다시 병원에서의 삶으로 바뀌었다. 그때마다 신앙이 버팀목이었다. 강한 믿음은 강한 엄마를 만들었다.
"티모시는 어찌 됐든 평생, 병원과 연을 쌓고 살아야 해요. CGD는 유전이 될 테고, 아들은 1년에 한 번씩 검진을 받아야하죠. 누구나 다 살면서 각자의 짐을 안고 버티잖아요. 우리 아들은 그게 '병원'일 뿐이에요."
한바탕 뛰어놀던 티모시가 만화영화에 집중한다. 2014년 새해 소망이 뭐냐는 말에, 앨리스씨는 "글쎄…이미 이뤄진 것 같은데요?" 하며 싱긋 웃는다. 이번 한해는 티모시에게 '약 없이, 주사 없이' 생활하는 생애 첫 해이자, 다른 가족들이 균 걱정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다. 아들과 함께 공원에 갈 수 있는 게 요즘 가장 큰 기쁨이란다. 축구에 재미를 붙인 아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의사선생님들이 우스갯 소리로 '티모시는 채혈검사에서 여자(골수기증자의 피)로 나올 테니 올림픽선수로 키울 생각은 말라'고 하는데(웃음)…건강하게 뛰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너무 감사해요. 물론, 골수기증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이렇게) 한 아이를 살릴 수 있잖아요?" 아픈 한인 어린이들을 위해 골수기증등록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새해, 새출발, 기쁨이 넘친다.
구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