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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미애의 줌마저씨 敎육 공感

선행 좋아하다 인생 망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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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미애 대표

선행학습만큼 이율배반적인 게 있을까. 정부와 국회는 선행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고, 교육당국은 이를 규제하고 있으나 학부모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맞부딪치는 현실은 영 딴판이다. 학교나 학원 모두 아이가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한다. 그런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줌마저씨에게 제 아이 친구 경식이 얘기를 하려 한다.

 경식 엄마는 소위 동네 교육정보통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경식이를 과학고에 보내기로 마음먹었고, 그때부터 국어·영어·수학 과외와 학원 두 개를 시켰다. 주변 동네 엄마들은 피아노 학원 하나 보낼 정도였으니 주변의 눈총을 살 수밖에. 남들이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학원도 경식 엄마는 미리미리 신청해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학원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종종 주변 엄마들에게 “내게 물어봐. 내가 답을 알려줄게”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경식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원형 탈모증을 보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의사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절대 주지 마라, 학원도 과외도 모두 끊어라”라고 처방했다. 사실 경식이는 아파트 단지에서 만날 때마다 지켜보면 학교에서 하교하는 시간이 다른 아이들보다 긴 독특한 아이였다. 화단에서 나무도 한참 보고, 길거리 차들도 물끄러미 보면서 하교하는 아이. 다른 말로 하면 자연에 관심이 많고 성향이 한가로운 아이였다. 그런 경식이가 하교 후에는 친구와 놀 시간도 없었다. 당연했다. 그 많은 학원과 과외, 그리고 그 숙제를 하려면. 심성이 그런 아이가 과한 스케줄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경식이는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중·고등학교 내내 의사의 지시로 공부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과학고와 대학은 더 이상 논외였다.

 물론 선행을 소화할 수 있는 아이들도 있다. 자기 스스로 공부 욕심이 많거나 승부욕이 뛰어난 일부 말이다. 하지만 보통 아이들에게 선행은 공부를 싫어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보통 아이에게 선행은 가능하지 않다. 교육과정은 아이들의 발달 상태를 반영해 만들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보통 아이에게 선행을 위해 투자되는 시간은, 오히려 기본을 탄탄히 하고 심화학습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다지는 시간으로 바뀌어야 하는 게 맞다. 부모의 과도한 선행 의지는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도 있다.

이미애 대표

이 대표는 네이버 카페인 ‘국자인’(http://cafe.naver.com/athensga)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