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봄-김종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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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새벽에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판으로 나가신다.
당신의 아내가 들판 위에 누워 있는 어둠을 걷어내고 풀잎의 올을 짜는 것을 아버지는 모르신다.
이 마을 위에 덮인 겨울 안개 때문에 천상의 아버지는 볼 수가 없다.
촛불이 켜진 채로 꺼지는 아침 일곱시.
아들은 들창을 열고 들판의 침묵과 겨울안개를 찍어내는 어머니를 부른다.
그러나 이 마을 위에 덮인 겨울 안개 때문에 삼단 같은 새봄의 머리털을 빗질하는 어머니를 볼 수가 없다.
답답하고 캄캄한 겨울 안개 때문에
어머니의 손끝에서 깨어나는 봄빛의 경악을 볼 수가 없다.
이 어리둥절한 시대를 뚫고 돋아나는 어린 풀잎의 착각을
짚으로 덮어주는 크낙한 사랑이 어머니의 손끝에서 전해올 뿐이다.
아들아, 아들아, 너희에게서 일어나는 이 봄은 모두 너희에게 전해 주리라.
간밤의 악몽을 털어 내고 어둠을 털어 내고
금빛의 빛나는 공기로 얼굴을 씻고
부활하는 나라의 풀잎으로 깨어나는 첫 아침
겨울안개가 깔린 이 봄을
짚으로 조심스레 덮어주는 어머니의 저 시린 손끝을
아들은 너무나 익숙하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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