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On Sunday

아베를 비난할 자격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9월 아르헨티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장. 기자에게 다가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한국 기자를 알아본 걸까. 잠깐 스친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 유치 결정을 하루 앞둔 9월 7일 그날. 힐튼호텔 로비에서 그는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목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기자를 IOC 관계자로 착각했던 게 아닐까. 한데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그의 인사는 뜻밖에 효과가 있었다.

방사능 유출 우려조차 아베 총리가 주먹을 쥔 채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정부가 보증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쏙 들어갔다. 놀라운 건 유치에 성공한 다음날에도 아베 총리가 힐튼호텔 로비에서 목례 퍼레이드를 계속했다는 점이다. 기쁨에 겨워 입꼬리가 약 2mm 정도 올라갔다는 걸 빼곤 다른 점이 없었다. 미국·유럽 IOC전문기자들은 한국인인 기자의 눈치를 살피며 “역시 일본”이라고 속삭였다. 아베 총리의 계산된 겸손 퍼레이드는 ‘대박’이 났다.

아베 총리, 허투루 봐선 안 될 인물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두고 미국이 일본 측에 “주변국의 분노를 사는 언행을 삼가겠다는 약속을 은밀히 요구하고 있다”는 24일 보도에 기대어 “그럼 그렇지”라며 마음 한구석에서 안심하긴 이르다. 서울 근무를 마치고 도쿄로 복귀해 독도를 다케시마로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고 있는 한 일본인 외교관은 기자에게 “이슈가 터질 때마다 확 달아오르는 한국인들의 감성은 한국의 발전에 득도 되지만 외교에선 독이다”라고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상대를 알아야 한다. 한·일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하면서도 얼음과 숯처럼 좀처럼 서로 섞이지 않는 차이를 안고 있다. 이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순간 건너기 힘든 ‘오해의 강’이 생긴다. 지난 20일 중앙일보·JTBC 기자 초청으로 강연을 한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인 사와다 가쓰미 마이니치신문 기자는 언어의 표현 차이부터 지적했다. 일본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인들이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대해 사와다 기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진정성’은 일본어로 ‘성의’로 번역되는데 일본에서 ‘성의를 보여라’는 것은 ‘돈으로 보상하라’는 뜻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차이조차 만나야 알게 된다. 서로 등을 돌린다면 한·일을 오가는 기업인과 여행객만 고달플 뿐이다.

아픈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고개 숙이며 사과하는 아베 총리를 보고 싶다면 우리 역시 한번쯤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울 지하철에서 우리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 노동자가 혹시나 받고 있을지 모를 학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도쿄 올림픽의 슬로건은 ‘Discover Tomorrow(내일을 찾아가자)’다. 내일을 찾자면 과거부터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이든 우리든 과거 앞에 솔직해질 용기가 없다면 내일은 늘 요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전수진 국제부문 기자 sujiney@joongang.co.kr